탄광 측은 재해율을 낮추려고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초급 관리자에게 물었다. 따라서 관리자들은 재해 보고를 해봐야 자신에게 문책이 떨어지니 공상환자를 병원 대신 유급휴가로 전환하는 것이다. 광부들은 그걸 악용해서 재해 환자 시늉을 했으며, 관리자들은 보고하는 것이 싫어서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탄광촌 명절 - 장성은 텅텅 비고, 황지는 쓸쓸하고

『태백시지』에도 나와 있듯 태백시는 98%가 외지인으로 구성됐다. ‘전국에서 1개 읍(면) 사람만 빼고 다 모여 들였다.’라는 곳이다. 그래서 명절 때가 되면 너도나도 고향 찾아가느라고 도시가 텅텅 빈다. 특히 석탄공사 장성광업소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장성지역은 도시 자체가 텅 비었다. 1960～1980년대에는 석공 근무한다는 얘기만 듣고도 서로 딸을 주려 했을 정도로 장성광업소는 급여도 많아 모두 금의환향하듯 고향에 갔다.
그러나 영세한 탄광이 몰려서 도시를 이룬 황지 지역의 상황은 장성지역하고는 크게 달랐다. 절반 정도만 고향을 가고 나머지는 탄광촌에서 쓸쓸하게 머물렀다. 가난에 굶주린 한을 못 이겨 고향을 떠나올 때는 돈을 벌어 가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들어와 본 탄광의 현실은 그렇게 넉넉하지 못했다. 탄광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빚에 빚을 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러니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없는 형편에 명절마다 고향 다녀오다가는 빚만 더 질 뿐이다. 쌀을 팔아 여비를 마련해 명절 보내고 돌아와서는 다시 쌀을 사려고 사채 빚을 끌어들일 뿐이다.
명절에도 탄광촌에 머무르면서 ‘3～5년간 돈을 더 벌고서 고향에 가겠다.’라고 마음을 다지곤 한다. 아예 고향을 원수처럼 등지고 ‘돈 벌기 전에는 가지 않겠다.’라고 이를 악무는 광부들도 많았다. 돈에 한이 되고 가난에 밀려 떠나온 고향이니 한은 더 컸다. 그러다 보니 탄광촌이라는 낯선 땅에서도 서로 정붙여 지내기가 한결 쉬웠으며 탄광촌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끼리도 인정 있게 지냈다.
탄광 노동자들은 명절에도 고향 못 가는 울적함을 술로 달랬다. 황지 시장은 명절마다 대다수 철시되었지만, 몇 군데 술집은 문을 열었다. 주로 탄광 순직자 가족들이 운영하는 선술집이었다. 고향을 못 간 광부들은 순직자 가족이 운영하는 선술집을 찾아가 죽은 동료를 떠올리며 그 가족들과 한풀이를 하곤 했다. 서로 외로운 사람끼리 쓸쓸함을 달래주던 선술집들은 태백기차역 주변이나 화전지역, 대밭촌 주변 등에 꽤 많이 있었다. 선술집은 명절에 고향을 못 간 광부들의 울적한 심사를 달래주는 위안처였다. 1960～1970년대의 황지지역 명절은 사람은 많았으나 씁쓸한 기분 때문에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태백탄광촌은 탄광의 호황기를 거쳐 폐광촌으로 전락했다. 그 과정에 관광도시라는 정책 변화를 통해 탄광촌은 새로운 도시로 변모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도 고향을 찾아 떠나는 사람보다 태백으로 찾아오는 귀성객이 더 많아진 것도 하나의 변화이다. 태백탄광촌을 고향으로 삼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탄광 이주민 2세대가 뿌리내린 현상은 태백 탄광촌을 고향으로 삼으려는 정주 의식이 높아졌다는 걸 반영한다. 이러한 변화는 태백탄광촌이 이제는 고향을 등진 이방지대가 아니라 희망을 심는 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태백시가 변화하더라도 도시 발전의 원동력은 광부들의 한과 꿈이 뿌린 씨앗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탄광촌 휴일 풍경

공휴가 나면 광부들은 이웃과 짝을 이뤄 계곡으로 들어갔다. 평평한 바위를 구해서는 돌구이를 즐겼는데, 돼지고기 특히 삼겹살이 최고의 메뉴였다. 탄가루를 먹는 광부들에게 돼지고기는 몸에 좋은 음식으로 널리 알려졌다. 태백 삼척 정선 영월 지역탄광촌에서는 탄광 가까이 있는 계곡의 돌은 죄다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태백은 금천 잣나무골, 문곡풀장계곡, 동점 방태골, 소도 당골이 돌구이로 유명한 장소였다. 환경문제가 대두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 계곡에서는 돌구이판으로 쓰던 그을린 돌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돌구이는 탄광촌의 대표적인 휴일 풍속이었는데 조선시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18세기 조선시대 때 소나무 아래서 숯불에 벙거짓골을 데워가면서 고기를 구워먹던 풍습이 그것이다. 벙거짓골은 무쇠나 곱돌 따위로 벙거지(갓모자)를 잦혀 놓은 것처럼 만든 그릇으로, 탄광촌에선 평평한 돌이 벙거짓골을 대신한 셈이다. 이러한 조선시대 풍속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그림 <야연(野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때는 잔설이 내리는 음력 10월, 남대문이 발아래 놓인 남산의 산기슭. 그래도 푸르른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아래에 화문석을 펴 놓고, 뜻이 맞는 일당(一黨)들이 둘러앉아 먹는 육적(肉炙) 맛. 여기에 잘 빚은 청주를 내린 노주(露酒)까지 곁들이니 살을 에는 추위도 부러운 듯 자자든다. 그래서 홍석모(洪錫謨, 1781·1850)는 1849년 68세의 나이에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란 책에서 이 풍경을 두고  “요사이 한양 풍속에 화로에 숯불을 훨훨 피워 놓고 번철(燔鐵)을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름·간장·계란·파·마늘·고춧가루에 조리하여 구우면서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는다. 이것을 난로회(煖爐會)라 한다”고 적었는지도 모를 일이다.(주영하,「조선말 그림 <야연>으로 본  ‘난로회’ 풍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