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에서는 월급을 가리켜 노임, 혹은 간조(勘定, かんじょう)라고 하여, 월급날을 노임날 혹은 간조날이라고 불렀다. 월급날이 가까워 오면 탄광촌 주민들은 “이달 간조는 언제 나오지?”하고 서로 묻는 것이 인사였다. 석공은 1970년대 말까지, 민영 탄광은 1980년대 후반까지 월급날이 일정하지 않았다. “간조 준다”는 확정된 날짜에 대한 소문만 들리면 탄광촌 전체가 들썩들썩했다. 월급 며칠 전부터 탄광촌 가게에는 새 옷, 새 신발, 새 가전제품을 들여놓는 짐차들이 줄을 섰다.

월급 전날에는 경리 직원들이 사과 궤짝으로 돈을 실어와 노란 월급봉투에 담을 돈을 세느라 밤을 새웠다. 월급을 지급하는 장소는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다. 기계과 전기과 등은 광업소 본관의 경리과 사무실에서 과별로 받았으며, 갱내 종사자들은 쌀 배급소에서 급여를 받았다. 광업소 본관 앞이나 배급소 앞은 월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배급소 안에는 궤짝과 포댓자루 안에 돈다발이 가득 담겼다. 손으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 돈이 모자랄 때도 잦았다. 손실금은 경리 직원이 충당하는데 이를 위한 별도의 비자금도 있었다.

월급날에는 일 나간 남편을 대신해 아내들이 배급 창구 앞으로 달려가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직번을 불러주고 인감증에 붙어 있는 도장으로 수령확인란에 찍었다. 월급봉투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는 시내와 집 근처의 단골집을 찾아다니면서 외상값을 갚느라 분주했다. 집으로 돌아와 보면 두툼하던 월급봉투는 홀쭉해져 있었다.

월급날이면 광부의 아내들은 예쁘게 차려입고 화장을 했다. 탄광촌 술집의 아가씨들도 월급날에 맞춰 평소보다 예쁜 옷에 진한 화장을 하고 기다렸다. 일부 광부들은 안주머니에 월급봉투를 통째로 넣고 술집으로 달려가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마셨다.

아내가 월급을 타러 가는 경우가 많지만, 월급을 타려고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면 30% 가까이는 남자들이었다. 술값으로 봉투째 날렸다는 소문은 부부간에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싸움을 통해 월급날 저녁부터 사택으로 퍼졌다. 외상 술값만 갚고 돌아 나오겠다는 마음이 주모의 서비스 술 한 잔에 굴복한 것이다.

광부들은 평소에도 술 인심이 넘쳤다. 게다가 주머니 속에 돈 봉투가 있고 보면 인심이야 더 좋았으리라. 평소 알든 모르든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을 끌어들였다. 그것은 탄광촌의 넉넉한 인심이기도 한데 탄광촌에서는 ‘기마이 쓴다’라고 했다. 기마이는 ‘기마에(きまえ)’라는 일본어식 표현으로 물건이나 돈 같은 것을 아끼지 않고 시원스럽게 쓰는 호기를 뜻한다. 한턱을 내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호기나 위세를 부리면서 선심 쓸 때 사용하는 말로, ‘내가 쏘겠다’고 기분을 내는 셈이다.

일부 광부들은 술값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에게 줄 월급봉투를 변조했다. 경리직원에게 월급봉투 용지를 얻어서는 이상한 공제금을 잔뜩 적어서 지출로 잡는 것이다. 그렇게 조성된 비자금은 뒷골목 술집에서 기마이술로 흥청망청 뿌려졌다. ‘광산돈은 굴 밖만 나오면 맥을 못 춘다.’라는 말 그대로 헤펐다. 외상 술값 갚으러 갔다가 너무 마셔서 외상까지 해놓고 왔다는 말이 그걸 알려준다. 기마이술이 있는 날에는 술집 주인이 술값에 바가지를 씌워도 따지지 않았으니 술값이 평소보다 비쌌다.

광업소마다 월급날은 달라도, 탄광촌에 사는 사람들은 오늘이 어느 광업소 월급날인지 금세 알 수 있을 만큼 요란했다. 월급날이면 골짜기마다 들어선 사택단위별로 흥청거렸다. 술집은 밤새 환하게 불을 켰고 새벽까지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선술집이나 나이트클럽까지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도시 전체가 탄광의 월급날에 맞춰 돌아갔다.

자녀들은 용돈을 타려고 월급날을 기다렸다. 용돈이 없던 가난한 시절에도 월급날만큼은 기마이술 같은 기마이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 단위의 외식이 귀하던 당시에도 월급날이나 월급 탄 주말에는 외식하던 낭만이 있었다. 탄광촌에서는 매달 월급날로부터 이삼 일간은 식당, 옷집 등에 손님들이 넘쳤으며, 탄광촌 경기는 명절 대목처럼 흥청거렸다. 1970년대 그 귀한 택시가 밤새도록 광부들이 사는 사택의 산골짜기로 잇달아 들락거렸다. 

이러한 풍경은 1980년대 중반, 은행 입금이 정착되자 사라져갔다. 아내에게 경제권이 넘어가면서 소비도 줄었다. 월급봉투의 변조라든가, 노임날의 기마이술은 꿈도 못 꾸게 됐다. 급여가 통장으로 입금되면서 은행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광부들은 불편하다면서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또 지정 은행에 급여가 입금되는 월급날,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은행 앞은 긴 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광업소 경리직원이 은행으로 지원업무를 나가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한꺼번에 월급을 찾으려 몰리는 소동은 가라앉았다. 당장 쓰지 않을 돈은 통장에 예치해두면서 알뜰한 가정경제가 정착됐다. 씀씀이가 늘어나는 외상 대신 현찰을 이용하면서 돈을 아낄 수 있었다.

살림은 나아졌으나 광부들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하다. 급여가 은행통장으로 지급되면서 광부에 대한 가족들의 대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금으로 두툼한 월급봉투를 건네면서 어깨 한번 으쓱하던 광부의 모습도 사라지고, 봉투를 받아들면서 함박웃음 짓던 아내의 모습도 사라졌다. 월급봉투를 받는 날만이라도 아내로부터 들어보던 “여보 수고 많았어요.”, “고마워요.” 하던 인사가 그리운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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