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택이 있는 마을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씨줄과 날줄의 줄도 정확하게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집이 그 집 같아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화장실에 갔다가 되찾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벽의 동 호수는 지워진 지 이미 오래였고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화장실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으면 으레 길을 잃었거니 여겼다. 그래서 찾으러 나가 데리고 들어오는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외지 사람뿐만 아니라 사택에서 오래 살던 사람도 집 찾기가 헷갈렸다. 노인들이나 술 마신 남자들이 자기 집 호수와 같은 아랫동, 혹은 윗동에 들어가서 자는 일도 잦았다. 또 어떤 할머니는 남의 집에 들어가서 안에 있는 주인보고 “놀러 왔는가?” 인사를 하여 진짜 집주인을 어리둥절케 했다. 그와는 반대로 남의 빈집에 들어가 한참씩이나 있던 한 할머니는 집주인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놀러 온 줄 알고 “우리 며느리 나가고 없네!” 하여 집주인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다반사였으니, 처음 잠깐 서로 당황하다가는 이내 상황을 알아채고 한참을 웃었다. 그 일은 삽시간에 동네에 소문이 쫙 퍼져 며칠 동안 사택마을에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다.

탄광촌 사택은 집 구조도 그렇거니와 살림살이까지 비슷해 남의 집에 들어가도 낯설지 않았다. 외부와 교류가 없는 탄광촌 주민들의 살림도구란 ‘옆집에 있는 것은 나도 있어야 한다.’라는 살림살이 경쟁이 붙으면서 비슷하게 갖춰놓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젊은 남자가 술을 마신 채 사택으로 돌아왔다. 병방근무자가 아침에 퇴근하면서 술을 한잔하고 돌아오다 보면 한낮에 사택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자기 집으로 알고 들어선 남의 집은 마침 텅 비어 있었다.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도대체 마누라는 어딜 간 거야’하고 투덜거리던 남자는 이내 곯아떨어졌다.

나들이에서 돌아온 진짜 주인집 아내는 웬 낯선 사내가 큰대자로 누워 잠이 든 것을 보는 순간 기겁을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앞 동에 사는 남자가 아닌가. 사택에선 남의 집으로 찾아드는 실수가 잦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방 안에 와서 잠을 자는 남자는 처음 보는지라 가슴도 두근거렸다. 방안에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도망 나온 주인집 아내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물 한 컵부터 삼켰다. 낯선 사내를 깨우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 옷장의 이불까지 꺼내 덮어주고는 살그머니 사택을 나섰다.

그길로 아랫동 남자 집에 가서 “당신 남편 우리 집에 잔다.”고 전해주었다. 놀란 가슴 얘기를 몇 번씩 하기도 하고, 그 집 아내랑 희희낙락하며 시간을 보냈다.

늦은 오후, 잠에서 깬 젊은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남의 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황당한 마음에 사방을 둘러보다가는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적이 안도를 하며 서둘러 빠져나온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윗집 아주머니도 놀러 와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아내는 “아니 퇴근 한지가 언젠데 집에는 이제 들어와요? 작은이가 생겼나 보죠? 아무래도 작은집에서 한잠 자다가 온 것 같은데…” 하고 놀려대니 말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 날이면 삽시간에 사택 전체에 소문이 쫙 퍼진다. ‘○○는 자기 집도 못 찾아 누구네 집에 가서 잤더라.’던가 “흑심 품고 일부러 간 거 아니냐?”라며 놀렸다. 또 안방을 뺏긴 안주인보고는 “샛서방 받아들였네!” 하고 놀려댔다.

사택에 사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문을 잠그지 않고 살아간다. 이웃을 믿고 살기 때문이다. 먼 사택까지 누구네 집 아이인지도 다 아는 터라 낯선 사람을 금세 구분한다. 문을 잠그고 사는 집이라야 신혼집뿐인데 그래도 매일 문을 잠그면 ‘별나다’면서 수군수군 거릴 정도였다.

먼 여행을 가는 집에서는 열쇠를 옆집에 맡겼다. 옆집은 이 열쇠로 이웃이 귀가하는 날에 맞춰 연탄불을 피워준다. 추운 날 집에 왔을 때 따뜻한 기온도 필요하거니와 더 중요한 것은 연탄가스 중독 예방이었다. 불을 피우지 않던 방에 금방 연탄불을 피우면 연탄가스 중독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못 믿는 세상이 되면서 한 개로도 모자라 보조자물쇠, 특수자물쇠 등 자물쇠가 두세 개씩 하는 도시와는 다른 탄광촌 인심이다.

사택에는 새로 이사 온 집에서 떡을 돌리는 풍습이 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은 2～3일 내에 이사떡(신고떡)을 하여 “○동○호에 새로 이사 왔습니다.”하고 집집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한다. 그러고 나면 떡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기 집에서 가장 맛있는 반찬 한두 가지씩 들고는 새로 이사 온 집에 답방(答訪)을 했다. 답방을 가서는 사택 생활에 필요한 지혜들을 들려주곤 한다.

또 사택에서는 동별끼리, 또는 두세 개 동이 어울려서 쌀을 걷어 떡을 해먹는 풍습도 있다. 이 떡을 가리켜 모둠 떡이라고 불렀다. 농촌지역에서 행해지던 공동체 생활이 탄광 사택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모둠떡을 나눠 먹을 때는 동네 어른이 나서서 식구 수에 따라서 떡을 나눴다. 쌀은 똑같이 걷었지만, 떡을 먹을 때는 식구 수가 많은 집이 더 가져가는 모둠떡의 분배법은 탄광촌의 미덕이다. 세금은 공평하게 걷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더 많이 돌려주는 복지정책처럼 말이다. 쌀은 같이 걷고, 먹는 것은 식구 많은 집이 더 먹는 모둠떡의 분배는 합리적인 분배였다.

농촌공동체에서도 사라져가던 이사떡과 모둠떡 전통이 탄광촌에서는 재현되고 있었다. 이사떡과 모둠떡은 탄광촌이 지닌 인정 공동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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