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 동(건물)에 5가구가 살아가는 사택에서는 옆집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 훤히 알고 살아갔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사택마을에서는 이웃끼리 비밀을 만들지 못했다. 비밀스런 말들을 옮기기 위해서일까? 쥐들은 밤마다 분주했다. 사택 지붕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쥐들은 이리 우르르 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놀았다. 잠까지 설치던 날에는 벌떡 일어나서 노는 쥐들을 향해 막대기로 천장을 찔러대길 하룻밤에도 수차례 거듭했다. 그러면 놀란 쥐들은 또다시 옆집으로 우르르 쾅쾅거리며 도망 다니곤 했다.

  어떤 날은 천장이 뚫린 집으로 발을 헛디딘 쥐가 떨어지기도 했다. 천장에서 떨어진 쥐에 놀란 가족들은 쥐잡기에 나서느라 부산했다. 장롱 뒤, 책상 뒤로 숨은 쥐를 향해 들쑤시느라 밤잠을 설쳤다. 쥐들이 요란하다 보니 모든 집의 천장마다 쥐가 흘린 분비물로 얼룩덜룩했다.

  천장은 쥐를 쫓는 막대기에 찔려 찢어질 정도로 맥이 없었다. 천장뿐 아니라 벽도 말이 벽이지, 그냥 나무판자 두세 겹으로 가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옆집에서 화투판 벌이는 소리에, 심지어는 옆집 아저씨의 코를 고는 소리에 밤잠을 설친 사람들도 있다. 옆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할 경우엔 뭐가 맛있다면서 입맛을 다시는 아이들의 소리를 통해 옆집 반찬 메뉴까지 훤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하는 날이면 혼자 못 먹으니 옆집들을 불러 함께 먹었다. 가족끼리만 먹으려고 할 때는 아이들에게 맛있다는 말을 소리 내지 못하도록 ‘쉿!’하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나눠 먹을 형편도 못되는데 말을 냈다가 이웃 간에 의리 상할까 봐 걱정해서였다.

  탄광촌은 외부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가다 보니 광업소 돌아가는 일과 사택 내의 소식이 가장 관심사였다. 사택 벽 너머 옆집에 귀 기울이다 보면 심심찮게 하루가 넘어갔다. 옆집에서 생겨난 일은 늘 흥미를 끌었다. 방음 안 되는 벽으로부터 듣게 된 비밀 얘기들은 사택 마을에서 최고의 화제를 뿌렸다.
  옆집의 빚이 얼마이며, 고향 어느 곳에 땅을 샀으며, 누가 바람났다는 정보까지 훤히 꿰뚫고 살았다. 옆집을 통해 얻어 들인 재미난 정보는 공동수도에서 공유되었다.

  탄광촌에서는 1980년대 초반까지 공동수도를 통해 공급되는 공동우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2개 건물 10가구를 중심으로 양쪽에 공동화장실과 공동우물이 있었다. 옆집의 비밀은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모인 아낙네들에 의해 온 동네에 순식간에 퍼졌다. 우물을 중심으로 정보가 생산된다고 하여 ‘우물방송’이라고 불렀다. 라디오를 듣지 않아도 탄광의 사고를 알 수 있었고, 청첩장으로 연락을 취하지 않아도 이웃의 결혼식을 우물에서 알 수 있었다.

  부부싸움이 밖으로 다 드러나고, 드러내기 싫은 집안의 얘기까지 온 동네에 소문이 났으니 비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사택에 처음 온 사람들은 소문날 때마다 창피하게 여기기도 했지만 쉽게 이력이 붙었다. 처음 비를 맞을 땐 젖는 염려도 하지만 한참을 맞다 보면 더는 젖는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옆집에서 듣거나 말거나 방음이 안 되는 걱정을 잊고 살아갔다. 이웃과 하나가 되는 사택촌 생활에 적응했다. 오히려 감출 것도 없다 보니 사택 주민들과 가족 같은 끈끈한 이웃애를 가질 수 있었다.

  우물방송을 들으려고 모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우물은 탄광촌 주부들로 붐볐다. 동네 소식들이 궁금해진 사람들은 빨랫거리가 없는데도 빈 그릇을 들고 공동우물로 모여들었다. 비누조차 흔하지 않던 시절, 공동우물에는 방망이 하나만 들고 빨래하러 나온 탄광촌 주부들이 온갖 정보를 들고 방망이질했다.

  사택의 공동우물은 단순한 빨래터를 넘어 탄광촌 주부들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소중한 기능을 제공했다. 첫째, 공동우물은 광부 즉 남성 중심 사회로 움직이는 탄광촌에서 탄광촌 주부의 전용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자유를 보장받는 장소이다. 둘째, 공동우물은 가사와 육아, 그리고 가난한 살림 등 탄광촌 주부들의 고단함 삶을 빨랫방망이로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장소이다. 셋째, 공동우물은 비밀스런 얘기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정보가 생산되고 교환되는 언론의 장소이다. 넷째, 공동우물은 탄광촌 이웃 간에 친목을 나누는 사교의 장소이다. 다섯째, 공동우물은 탄광촌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소이다. 여섯째, 공동우물은 탄광촌 주부들의 정서적 공감과 유대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장소이다. 일곱째, 공동우물은 어머니를 따라나온 탄광촌 아이들이 물장난하거나 또래 아이들과 만나는 놀이터이자 탄광촌 주부를 대신하여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주는 탁아소의 장소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의 노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탄광촌 주부는 탄가루에 찌든 작업복을 빨기 위해 매일 빨래 속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빨래는 주부들에게 가장 고된 노동이었다. 하지만, 탄광촌 주부들은 공동우물에 마련된 빨래터나 하천에 모여 빨래를 하면서 고된 가사의 노동을 즐거운 시간으로 바꾸는 지혜가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탄광촌의 사택은 나무판자 사택에서 블록사택으로 변했다. 또 공동 수도가 사라지고 개인 수도를 갖추었다. 주택의 방음시설이 보완되고 개인 수도가 들어서면서 우물방송국은 사라졌다. 생활시설의 변화만큼 탄광촌의 풍속도 함께 변하고 있다. 이제 우물방송은 탄광촌에서조차 추억으로 돌이킬 뿐이다.

  방음이 안 되는 사택, 이웃끼리 비밀 없이 살아가는 주민들, 그래서 유독 탄광촌 사람들은 인정 있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사택에서는 아예 서로 대문을 활짝 열고 이웃에게 보여주며 살아갔다. 1년 내내 문을 잠그는 일이 없다. 설령 멀리 여행을 떠나느라 오래도록 집을 비울 때조차도 열쇠는 이웃집에 맡겨놓고 떠났다. 문을 잠그는 것보다 옆집 등 이웃을 더 신뢰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서로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이며 살아간 탄광촌 사람들, 탄광촌 사택에는 이웃 간에 인정이 넘쳤으니 사람 사는 재미는 쏠쏠했다.

  추억을 더듬다 보면 변화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버튼 하나면 누르면 빨래에서 건조까지 자동으로 이뤄지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웃과의 관계는 좀처럼 산뜻하게 바뀌지 않는다. 풍속의 변화만큼 탄광촌은 발전하고 있으나 인정은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웃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웃에게 부끄러움까지 다 끄집어내 놓고 살던 시절이 더욱 그립다. 옹기종기 모여 이웃 간의 정을 나누던 빨래터가 그립다. 사생활 보장은 어려웠어도 옆집 간에 우정을 돈독하게 나누던 탄광촌 사택의 인정 있는 생활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