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공중전화 동전 투입구에 인쇄된 문구였다는 ‘통화는 할 수 있으나 반환되지 않는 돈’을 부제로 달았다.

화자는 전화기 앞에 쓰인 문구를 읽는 순간 ‘파단면을 이룬 기울기에 따라/규폐병동 광부들에 지급되는 산업재해 보상비’라는 진폐환자의 처지를 떠올렸다. 이는 산업화에 희생된 광부에 대한 국가의 복지정책을 질타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 속에 등장하는 ‘근로복지공사 동해병원 규폐 1병동’은 동해지역에서 실존하는 병동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치유가 불가능한 진폐증, 즉 광부의 직업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요양하고 있다.

보관되어 있다는 ‘눈물로 씌어진 비망록’을 직접 읽어보지 않아도, 이미 이 시는 갑·을·병방 3교대로 고단한 삶을 지탱해 온 광부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전달하고 있다.

맹문재가 ‘최승익이 진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광부들의 피폐한 삶을 가장 잘 반영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처럼 규폐병동 9편의 연작은 대부분의 탄광이 폐광한 2008년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산업화 속에서 가장 소외 받은 계층이라는 광부의 과거 삶도 그렇거니와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진폐증의 문제 또한 심각한 실정이다.

퇴직과 실직으로 인해 광부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광부직업병을 앓는 진폐환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현실이 탄광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진폐환자들은 2007년 9월부터 ‘재가진폐환자생존권 투쟁’을 시작해 1개월 단식, 서울 상경시위, 성희직 시인의 단지 항의 등 1년여의 장기 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또 2008년 9월 한달 동안만도 대통령 면담을 위한 서명운동, 청와대 앞 1인 시위, 진폐복지정책 개선을 위한 토론회 등의 시위를 계속 펼치고 있다.

동해지역문인으로 탄광시 창작에 나선 시인은 최승익과 정영주에 불과하지만 그 작품 수에 있어서나, 탄광문학에 끼치고 있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따라서 동해지역문학은 지역의 산업환경적 측면에서나 최승익과 정영주의 문학적 유산을 계승하기 위한 일환으로 탄광문학에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