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이 개발되면서 골짜기마다 광부들의 집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산골짜기는 순식간에 탄광촌으로 바뀌었다. 순간적으로 대규모 인구 유입이 이뤄지면서 주택난은 심각했다. 사택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혜택 받은 사람이고 대다수 광부는 남의 집 셋방을 살거나, 개울가에 무허가로 집을 지었다. 땅은 대부분은 광업소 소유였다. 사택은 없고 외지에서 광부가 되겠다고 밀려오는 실정이니 산 쪽이나 개울가에 짓는 집까지 막지 못했다.
탄광촌의 슬럼이라 할 수 있는 도둑골과 까막동네라는 마을은 그렇게 생겨났다.
 도계탄광촌의 도둑골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 외에도 아편쟁이, 문둥이까지 살았다. 화장실에는 아편에 중독된 사람들이 쓰던 주사기가 흔할 정도였다. 도계에서는 물건을 잃어버렸다 하면 도둑골 사람들의 소행이라고 여겼다. 도둑골 사람 중에는 남의 집 물건을 비롯하여 광업소 자재, 저탄장의 석탄 등을 훔치는 이들이 많았다. 또 기차역 주변 화차의 석탄을 훔쳐 연탄을 찍어 팔거나, 임무소의 나무를 훔쳐 장작으로 팔았다. 도둑골은 골목 사이로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므로 경찰이 도둑을 보고 쫓아가다가도 도둑골로 들어가면 놓쳤다. 도둑골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도 진짜 도둑들이 많이 살았던 데서 유래한다.
 1967년에는 도둑골에서 염병으로 불리는 무서운 장티푸스가 발생하였는데, 경찰들과 군인들이 도둑골을 새끼줄로 에워싸고는 그곳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지켰다. 장티푸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도둑골 사람들에게 쌀을 던져주면서 먹고 살게 했다. 그러한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 도둑골은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에 완전히 휩쓸려나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도계의 도둑골 말고도 전국 곳곳에 ‘도둑골’이라는 지명이 많이 있다. 예컨대 강원도에는 설악산 한계령 도둑골과 횡성군 둔내면 조항 2리 도둑골이 있다. 경남에는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의 도둑골과 함안군 칠서면 도둑골, 양산시 원동면 여영리 도둑골이 있다. 경북에는 밀양군 청도면 도둑골이, 경기도에는 양평군 양평읍 도둑골이, 충북에는 음성군 소이면 문등리 도둑골, 충주시 지천동 도둑골, 청주시 용정동 도둑골 등이 있다.
 도둑골 지명은 골짜기가 도둑이 숨기에 좋을 만큼 후미진 곳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비롯해 ‘두두룩한 언덕’, ‘임진왜란의 진 도독’이라는 등 그 유래도 가지가지다. 다른 지역의 도둑골은 하나의 지명유래로 주장하기가 어렵고, 또 어떤 도둑골은 지명이 못마땅하여 도덕골로 바꾸기도 했다. 그런데 탄광촌 형성과 함께 주택이 형성된 도계의 도둑골은 물건을 훔치던 진짜 도둑이 사는 골짜기로서 그 정확한 유래를 지니고 있다. 도계의 도둑골 역사는 탄광촌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온 동네가 다 아는 그 지명이 삼척시에서 발간한 지명유래 책자에는 빠져 있다.
 한편, 까막동네는 도계광업소 도계갱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도계갱 저탄장에서 날아오는 탄가루에 온 동네가 새카맣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탄광 개발이 한창 이뤄지던 당시 도계탄광촌은 어느 구석이라도 탄가루 날리지 않은 곳이 있었겠는가. ‘마누라는 없어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라는 말까지 나온 탄광촌 아니던가. 그런 탄광촌에서 까막동네란 이름이 별도로 붙여질 정도였으니 까막동네의 탄가루가 얼마나 지독한지는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까막동네에만도 100세대가 넘게 살았으니 도계탄광촌의 규모가 가히 짐작된다. 까막동네에 세를 들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그때가 도계탄광촌의 전성기였으리라. 까막동네는 도계 지역 내에서 비교적 방값이 쌌으므로 빈손으로 도계를 찾아온 사람들의 첫 생활 출발지였던 셈이다.
 까막동네는 1989년의 석탄합리화로 내리막길을 타고 1993년 태정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동네라고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만큼 주민 수가 격감했다. 까막동네 만이 아니다. 도둑골은 마을 자체가 다 사라졌으니 탄광촌의 불빛은 그렇게 꺼져갔다.
 한편, 탄광촌에는 화약골이란 지명이 많았다. 화약고가 들어선 곳이면 어김없이 화약골이란 이름이 붙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많이 쓰는 탄광은 화약고를 주택과 떨어진 산중에 지어놓았다. 광산보안 화약 기능사 또는 기사 자격증을 가진 관리자와 경비요원이 함께 지켰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의 외부 반출로 말미암은 사고가 종종 나곤 했다. 일가족이 다이너마이트로 자살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았다. 다이너마이트는 커다란 폭발력을 지녔으므로 광업소 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나서서 보안을 유지했다. 광업소 노동자들의 시위 소식이 들리면 경찰들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도 화약고였다. 사북항쟁 때 정부 당국이 두려워했던 것은 공권력에 앞서 광부들이 화약고를 먼저 접수했기 때문이다.
 태백의 장성광업소가 소유한 화약고의 지명만 살펴보더라도 장성천주교 앞의 화광동 화약골, 장명사 옆의 계산동 화약골, 문곡풀장 옆의 문곡 화약골, 철암 아파트 옆의 철암 화약골이 있다. 탄광촌의 고유 지명이 된 화약골, 까막동네, 도둑골 등은 탄광 개발의 부산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