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자리 나쁘다고 유급휴가 주는 회사

재수를 믿고 운에 의존하면서 살아가던 광부들은 흉몽을 꾸면 출근하지 않았다. 실제로, 꿈 때문에 목숨 건진 경험이 있다는 광부들의 얘기는 흔하다. 사람의 목숨이 순간에 달린 작업장에서 일하는 광부인 만큼 운에 대한 믿음이 유달리 강했다.
 흉몽을 꾸면 출근하지 않는다는 금기어가 광부들의 의식을 지배하면서 광업소에서는 결근 사유 중에서 집안의 대소사나, 질병 사유 외에도 ‘꿈자리가 나빠서’라는 결근 사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마른 공수(결근하고도 출근한 것으로 처리하는 것)가 많은 탄광에서는 꿈이 나쁘다는 이유로 출근하지 않는 것을 유급처리해 주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흉몽은 결근 사유로 인정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꿈을 핑계로 결근이 잦은 농땡이 때문에 석탄증산에 급급하던 관리자나 동료가 애를 먹었다. 결국, 농땡이들이 지나치게 악용하면서 1980년대 중반 들어서는 결근 사유에서 꿈 핑계가 사라져갔다.
흥미로운 것은 흉몽이 결근 사유로 받아들여지는 않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으면서 ‘꿈자리 뒤숭숭’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꿈자리에 의지하던 광부들의 안전의식에 변화가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탄광촌에서 여자는 남자 앞길을 가로지르지 못 한다

남존여비 관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었다. 중국 당나라 때는 남존여비에 대한 내용이 법조문으로 만들어져 실행되기도 했다. 예컨대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 법으로 묻지 않지만, 여자가 남자를 때리면 징역 2년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 또 남자가 여자를 죽이면 징역 3년형에 그치지만, 여자가 남자를 죽이면 즉시 목을 벤다. 같은 죄라도 남자와 여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은 여자들이 남자 옷조차 못 타넘도록 했다. 여자가 타고 넘으면 재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여자가 남자의 옷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재수 없는’ 혹은 ‘앞길을 막는’ 등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해도 참아야 할 때가 잦았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했다. 그래서 여자는 무조건 조용히 있어야 했다. 요즘 인기를 끄는 여자 아나운서 직종만 봐도 그렇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아침 뉴스에 여자 아나운서가 얼굴을 보이면 ‘아침부터 암탉이 운다’며 방송사에 항의하는 시청자들이 많았을 정도다. 물론 지금도 일부에서는 첫 손님이 여자면 태워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택시가 있는가 하면, 첫 손님이 여자면 물건이 없다면서 팔지 않는 상점도 있다.
 탄광촌은 남존여비의 엄격한 금기를 최근까지 지킨 도시이다. 광부가 출근하기 전에 남의 여자가 집을 방문하면 재수 없는 일로 여겨서, 출근 전에는 방문하지 않는 금기를 지켰다. 남존여비 사상은 약간씩 모습을 바꿔 탄광촌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광부가 길을 건널 때 여자가 앞을 가로질러 가면 경을 쳤다. 출근 때 그런 일이 생겼다가는 출근 도시락을 그 자리에서 팽개치며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선 되돌아가서 그 여자 욕을 하며 술을 마시는 것이다. 덩달아 화가 난 광부의 아내는 그 여자 집을 찾아가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한바탕 하곤 하는데, “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년아, 어디서 남자 앞을 함부로 지나 다녀!”하고 욕설을 퍼붓는다. 같은 여자면서도 말이다. 그런 험악한 소리를 들어도 남자 앞길을 가로지르던 여자는 말 한마디 못했다. 금기를 어긴 죽을죄를 지은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흔한 말이 “이 무식한 년이”였다. 또는 대뜸 “네 서방 놈은 어디 다니는지 몰라도, 어디서 이런 못된 버릇을 배워 쳐먹었어?”하고 욕설부터 나간다. 심지어는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어디서 그런 무식한 걸 배웠어? 오늘 책임은 네가 져. 일당 내놓으란 말이야.” 하고 윽박지르는데 견디다 못해 연신 사과를 하면서 하루 일당을 보상해 주는 예도 적잖았다.
 그러다 보니 탄광촌 주부들은 광부들이 출근하는 시간이면 공동수도나 공동화장실에 가는 것도 삼갔다. 공동우물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아침, 점심, 저녁 때마다 밥을 지으려고 물동이를 이고 우물로 드나드는 주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이때 광부들 앞을 지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광부들은 갑방, 을방, 병방 3교대로 출퇴근하고 있었으므로 주부들은 아침, 점심, 저녁 모든 시간대를 조심해야 했다.
 하수구를 갖춘 부엌이 없던 시절에는 허드렛물을 밖에 버릴 때도 조심해야 했다. 출근하는 광부 앞에 버렸다가는 경을 친다. 어디 그뿐이랴. 아내는 출근 전에 남편을 기분 나쁘게 해서도 안 되고, 설거지 소리를 크게 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릇을 깨기라도 하면 재수가 없다 하여 출근을 하느니 마느니 소동이 벌어진다.
 1980년대까지 금기는 엄격하게 지켜졌다. 여자들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같이 어린 남학생 앞이라도 가로지르는 법이 없었다. 어릴 때 그런 대우를 몇 번 받고 나면 남자로 살아가는 것에 우쭐했다. 그래서 당시 여자 친구들에게 윽박지를 때도 ‘이 여자가!’ 한마디면 충분했다.
 유독 탄광촌에서 까다롭게 지켜지던 남존여비 금기는 맞벌이가 없고, 남자 중심으로 이뤄지던 노동이라는 현실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자가 가는 길 앞을 여자가 가로지르지 않는 금기는 노동의 노고를 숭상하고, 노동하는 일꾼을 섬기는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 주지 않는가.
 ‘출근할 때 여자가 길을 앞지르지 않는다.’는 금기는 강도 높고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는 광부들이 유세를 부리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광부들은 늘 죽음의 막장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가족이나 주민들조차 그들을 조심스럽게 대했다. 마치 사형을 확정 받은 죄수에게 간수나 다른 동료 죄수들이 예우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광부들을 중심으로 하는 금기는 남존여비보다는 노동에 대한 유세로 보아야 한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 바로 삶에 대한 예우이다. 탄광촌에서 널리 퍼지던 구호처럼 말한다면 산업전사에 대한 예우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의 세상은 ‘이 여자가!’란 말이 욕이 되지 않는 양성평등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아, 그러나 어쩌랴. 지금도 탄광촌에서는 여전히 여자들이 남자 앞을 가로지를 수 없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