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이 형성되기 이전의 태백시, 삼척시 도계, 정선군 고한과 사북, 영월군 마차리 지역은 반경 10Km 이내에 인적이 드문 두메산골이었다. 골짜기를 돌아 수십 리를 걸어가야 산밭을 일구던 화전민을 드문드문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1951년 새로운 광업법의 제정으로 개발 바람이 불면서 사업에 뜻을 품은 업자는 인부들을 이끌고 산을 헤치고 다녔다. 마치 금맥을 찾아 몰리던 미국의 서부영화처럼 우리나라 최대 석탄 매장지대인 강원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광구권 허가를 받으려는 희망자가 넘치면서 황량한 산골짜기에 석탄노다지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노다지란 말의 유래를 놓고 여러 견해가 있지만, 미국인들이 운산금광을 채굴할 때 생겨났다는 일화가 가장 설득력을 얻는다. 당시 많은 양의 금이 쏟아져 나온다는 소문을 들은 운산 일대의 주민들이 금광회사 철조망에 모여들었다. 그러자 미국인들은 손대지 말라고 저지하면서 ‘노터치(no touch)’를 연발했다. 그 후로 금이 많이 나온다는 뜻으로 ‘노다지’가 통용되었다고 한다.

금을 노다지라고 불렀던 것처럼 탄광촌에서는 석탄을 노다지라고 불렀다. 너도나도 노다지 꿈을 꾸며 쫄딱 구덩이, 즉 소규모 탄광이라도 운영하겠다고 덤볐다. 빚을 얻어 탄광을 시작한 사람, 남의 탄광 밑에서라도 일해 밥술 먹겠다는 사람, 예전에 금광 일에 경험있던 사람, 노다지 소문을 듣고 덩달아 들어온 사람 등등 온갖 사람이 탄광 근처로 모여들었다. 다음은 탄광개발 초기의 분위기를 잘 말해 준다.

늑구2리 쪽과 심포리에는 쫄딱 구덩이를 개발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당시에는 구덩이 하나만 제대로 맡으면 떼돈을 번다는 생각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탄광업자들이 많았다. 쌀 한가마니를 둘러메고 와서는 인부들을 모아놓고 쌀 몇 되 퍼주고는 목동발을 세우도록 일을 시켰다.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이니 쌀을 준다는 소문만 나면 우르르 몰려가 일했다.

그러다가 탄은 안 나오고 돈(쌀)이 떨어지면 업자는 구덩이 파던 것을 세워놓고 한동안 사라진다. 그러다가는 어느 날 다시 나타나는 데, 그때 보면 어디선가 돈과 쌀을 잔뜩 구해 와서는 인부들을 모아놓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마치 노름꾼들이 판을 벌였다가 돈이 떨어지면 슬그머니 나가서 돈을 꿔서는 노름을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갱구도 그렇게 개발됐다. 물론 허탕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번 탄맥만 잡았다 하면 돈방석에 앉았다. 가끔 어느 골짜기에서 탄맥을 찾아 돈방석에 앉았다는 소문도 심심찮게 들렸다.

- 《탄광촌 사람들의 삶과 문화》중에서 -

석탄수요의 증가와 석탄증산 정책의 개발 붐을 타고 곳곳에 광업소가 생겨났다. 100950년대 태백권에서 광구출원이 등록된 석탄광산만도 100여개에 달했다. 탄광이 생기는 대로 일손이 필요했으니 갱구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방이 온통 산으로만 둘러 막혀 고즈넉하던 산골짜기가 개벽하듯 요란해지면서 태백·삼척·정선·영월·점촌·문경 등의 탄광촌은 1950년부터 1960년 사이에 300% 이상의 인구 증가율을 보였다.

정부의 화전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산속에 살던 화전민들도 탄광 언저리로 몰려들었다. 또 탄광에서 돈을 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농촌지역에서 탄광을 찾는 노동자들이 러시를 이루었다. 경북 문경지역에서는 지역 농부들이 광부로 전업했으며, 일부 광부들은 탄광노동과 농사일을 병행했다. 영월 북면 마차리(200년 인구 1,500여 명)는 강원도에서 최초로 탄광촌이 형성된 지역이다. 1935년 탄광 개발을 시작으로 1960년대 전성기의 마차리는 탄광노동자 5,000여 명, 주민 1만 7,000여 명 규모의 탄광촌을 형성했다.

석탄이라는 단일 산업으로 성장하던 탄광촌이 시(市)로 승격하기도 했다. 1981년 삼척군에서 분리된 태백시, 1986년 문경군에서 분리된 점촌시의 탄생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점촌 지역은 인근 예천과 상주 지역 주민들이 장을 보러올 정도로 경북 내에서는 김천 다음으로 큰 상권을 형성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점촌의 집값이 서울과 맞먹는다 하여 ‘작은 서울’로 통했다.

탄광개발의 가속화와 함께 외지인이 급격하게 유입되면서 학교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학생을 수용할 수 없는 형편이니 초등학교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2부제 수업을 진행했다. 1960년대 탄광촌 교육계에서는 계속 증가하는 학생들을 맞이할 학교 짓는 일이 가장 시급했다. 삼척 도계초등학교, 태백 장성초등학교는 전교생 3,000명 이상의 학교 규모를 유지하면서 강원도 내에서 가장 큰 학교로 성장한다.

1965년 도계초등학교는 4,300명의 학생을 감당하지 못해 운동회도 이틀간에 걸쳐 진행했다. 1~3학년은 첫날에, 4~6학년은 다음날에 열었다. 게다가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청군과 백군뿐만 아니라 홍군까지 포함하여 3개편으로 나뉜 이색 운동회 풍경이 연출됐다.

탄광에서 노다지를 찾는 사람 중에서는 외국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한석탄공사가 1961년 서독의 지멘스(Simens)사와 광부 파견 각서를 교환하면서 광부들은 서독행을 자원하고 나섰다. 1963년 서독 파견 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000명이 몰려 9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 열풍을 타고 숱한 기업형 브로커들이 등장했다. 광부 파견은 1965년 5월부터 국가사업으로 확대되어 해외개발공사가 담당했으며, 1977년까지 총 7,936명이 서독 탄광에 취업했다.

서독행이 결정된 광부는 도계에서 실습을 받았다. 도계광업소에서 탄광 막장의 견학과 실습 등의 기초교육을 통해 적응훈련을 받았다. 서독에서 많은 돈을 번다는 기대감을 지닌 파견 예비 광부들로 도계탄광촌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파견 광부 훈련소는 1975년 장성탄광촌으로 옮겨졌다.

서독 광부 선발 때는 애국가를 외우고 쓰는 시험이 있었다. 한글 시험과 아울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애국가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서독의 광부로 나간 이들 중에는 돌아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정착한 이들도 많은데, 이들이 지금 재독 한인사회를 이끄는 주역이다.

서독에 간 한국인 광부들은 독일 광부들이 막장으로 들어갈 때 나눈다는 “글뤽 아우프(무사히 살아서 올라와 다시 만나자!)”라는 인사말부터 배웠다. 인사 속에는 탄광막장에 도사리는 죽음의 긴장감과 비장한 각오가 들어 있다.

서독에서 돌아온 광부들은 외화획득뿐 아니라 선진기술을 배워왔으므로 국내 석탄산업 기술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석탄산업이란 원동력을 통해 산업화를 성공하게 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광부들의 저력 뒤에는 독일 탄광에서 기술을 배우고 ‘라인강의 기적’을 배운 파견 광부의 노고도 함께 담겨 있다.

오늘날의 발전상은 가만히 앉아서 획득한 것이 아니다. 강원도 산골짜기 탄광 속에서, 심지어는 먼 서독 탄광까지 죽음의 위험을 감수한 광부들의 노고 끝에 얻은 것이다. 지금 동남아의 노동자들은 브로커에게 뒷돈을 주고서라도 한국으로 오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절대로 잊지 말자. 우리도 서독 광부로 가려고 줄을 서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