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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광촌 그 때를 아십니까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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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2월 20일 (월)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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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부와 계란 공약으로 당선된 노조지부장 |
보너스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로 받는 것이 최고다. 그런데 1970년대 처음 등장한 탄광의 보너스는 현금이 아니라 연탄 표나 쌀표 같은 물품들이었다. 탄광에서는 급여마저도 쌀로 지급하던 시절이니 평소보다 쌀을 조금 더 주는 것으로 명절 보너스를 대신했다. 영세한 탄광에서는 두부 한판(15모)이나 계한 한 줄(10개)이 전부였다.
대형 탄광에서는 돼지고기를 살 수 있는 전표를 지급했다. 태백지역 장성광업소는 명절 급여 기준 전 3~6개월 단위로 계산하여 만근한 사람에게는 세 근, 서너 번 결근한 사람에게는 두 근, 출근율이 나쁘면 한 근을 지급했다. 1960~1970년대의 돼지고기 보너스는 대단히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탄광에서 고기를 직접 나눠주거나, 지정 거래처에서 고기를 가져갈 수 있는 전표를 주었다. 돼지고기를 살 수 있는 돈육전표는 설과 추석 때 최고급의 보너스였다. 도계 지역 경동광업소는 돼지고기 3근, 정종 1병을 보너스로 대신했다.
50여개의 군소 탄광이 있는 태백 탄광촌에서는 노동자를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물품 보너스가 경쟁적으로 도입된 것은 노동자 유치를 위해서였다. 복지혜택이 많은 광업소가 좋은 회사로 손꼽혔으니 물품 보너스는 광업소에서 유능한 인력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가난하던 시절이니 배불리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자녀 학자금이나 부자 지급 등의 복지제도에서 좋고 나쁜 회사가 결정되었다.
당시 경제 상황으로 볼 때 부식품 지원은 파격적이었다. 점심 도시락에 계란 부침을 넣은 학생이나 직장인은 동료의 부러움을 사지 않았던가! 학생들은 도시락에 계란부침을 넣어 달라고 어머니께 조르다가 집안 형편도 모르는 철부지라고 야단을 맞지 않았던가! 야단치는 어머니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런 상황이 감안되어 노동조합 지부장 선거 때는 두부를 지급하겠다거나 계란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이 나왔다. 선거 결과, 식품 보너스를 많이 주겠다는 후보가 당선됐다. 두부 한 판이나 고기 한두 근 살 수 있는 전표 지급이 회사를 고르는 조건이 되었고, 지부장 선출을 위한 표몰이가 되었다. 식품 지급이 인기를 끌면서 광부들에게 지급할 두부공장을 직접 운영하는 광업소가 생겨났다.
광부들이 물품을 바꿔 쓰는 전표를 받을 때도 관리직은 현금 보너스를 받았다. 광부들은 현금을 원했지만, 광업소 측은 현금 보너스가 퇴직금에 합산되어 예산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에서 난색을 표명했다. 노사 임금협상 때면 으레 보너스의 현금 지급 방식을 요구하는 조항이 단골 메뉴로 올랐다.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대형 광업소에서는 명절 귀향비 명목으로 현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5,000원에서 1만 원 정도 지급하는 귀향비가 최초의 현금 보너스였다. 대형광업소는 1970년대 후반부터, 중소 탄광에서는 198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보너스를 현금으로 지급했다. 채탄직과 사무직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원화되던 보너스가 모두 현금 지급으로 일원화된다. 보너스는 공돈이라 하여 주로 물품을 사들이는 데 썼다. 현금 보너스는 탄광촌 가정에 가전제품, 가구, 의류 등의 물품 구매가 늘어나는 변화를 가져왔다.
현금 보너스는 수령급여가 아니라 기본급에서 50% 혹은 100%씩 지급됐다. 광업소는 퇴직금이나 보너스를 줄이려고 기본금을 실 수령액의 절반 정도도 못 미치게 정했으며, 나머지는 각종 수당으로 채워 놓았다. 따라서 대외적으로는 광부 보너스가 100% 또는 200%라며 홍보했지만, 실 수령액은 일반 직종과 비교할 때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탄광 측이 기본금에 의한 보너스 산출제도룰 만든 것은 만근을 유도해 석탄 증산을 독려하려는 의도였다. 기본급과 급여의 차액이 커 만근 출근자와 상습 결근자의 급여 및 보너스는 기하급수적인 차이가 벌어졌다.
일부 대형광업소에서는 현금 보너스를 지급하면서도 식품 보너스를 복지제도로 계속 이어갔다. 태백시 소도동에 소재한 함태광업소만 하더라도 폐광되던 1993년까지 출근 때마다 우유 한 잔과 달걀 한 개를 지급했다. 함태광업소는 살아 있는 닭을 한 마리씩 나눠 주기도 했다. 닭을 나눠 주는 날 퇴근길은 꼬꼬댁거리며 발버둥치는 닭의 다리를 끈으로 묶어 집으로 들고 가는 광부들로 진풍경을 연출했다. 탄광에서 받은 닭은 며칠 더 키우다가 공휴일이나 가족의 생일에 맞춰 잡아먹었다. 함태광업소의 살아있는 닭 보너스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주변 탄광 광부들의 부러움을 많이 샀다.
태백탄광촌에서는 함태광업소를 비롯해 몇몇 광업소가 명절날 육류 지급을 위해 양계장과 목장을 직접 운영했다. 도계 탄광촌에서는 경동 탄광이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목장을 운영했다. 출퇴근하는 광부들의 건강식으로 자체 목장에서 생산된 우유를 지원했다. 경동광업소에서는 1970년대에는 두부를 주다가 계란으로 바꿨는데, 2008년 현재까지 매달 계란차가 사택으로 와서 지급해 준다. 한 달 23공수 만근을 하면 계란 40개를 주고 결근을 하면 그 숫자는 줄어든다.
1980년 4월 사북사태 이후 정부에서는 광부들의 처우 개선에 관심을 뒀다. 광부 복지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탄광마다 새마을과를 신설했으며, 목장을 운영하는 광업소가 생겨났다. 광업소가 나서서 주부들의 부업을 장려했으며, 사택의 정비에도 앞장섰다.
정부에서는 건강식을 위한 돼지를 보급하기로 하고 노동자 수에 비례하여 살아 있는 돼지를 탄광에 보급했다. 태백시 화전동의 어룡광업소에서는 정부로부터 새끼돼지 150두를 받아 길렀는데, 나중에 새끼를 낳아 300여두로 늘어났다. 사육의 전문화가 요구되면서 광업소 새마을과가 나서서 아예 목장까지 만들었다.
탄광 목장에서 기른 돼지는 계절별로 광업소 휴일에 맞춰 노동자들에게 지급됐다. 소속 갱 단위로 산 돼지가 배급되면 광부들은 끈으로 묶어 계곡으로 갔다. 돼지 잡는 날은 광부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함께 모여 시끌벅적한 잔치가 벌어졌다. 당시 야유회 장소 중에는 절골이나 하장 계곡이 인기가 있었고, 광부 중에는 돼지 잘 잡고 요리 잘하는 사람이거나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 들어 명절 선물로 식용유, 세숫비누 세트도 등장했다. 매일 빨랫비누로 목욕하던 광부들은 세숫비누 세트를 좋아했다. 빨랫비누를 쓸 때는 퇴근차량이 비릿한 냄새로 진동했는데, 명절에 세숫비누가 지급되고 나면 근 한 달 동안 퇴근버스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풍겼다. 통근 버스 안을 가득 메운 향기에 취해 버스에 올라타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오늘은 여자 냄새가 나는군, 거 기분 좋은데!” 당시 광부들을 싱글벙글하게 한 단골 주인공은 다이얼 비누세트였다.
현금 보너스 대신 식품으로 보너스를 지급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가난한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 준다. 일 년에 한두 번 보너스 전표를 받아 돼지고기를 먹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쇠고기가 태백 탄광촌의 특산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이처럼 빨리 올 줄은 그때만 해도 몰랐다.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던 그 시절, 탄광촌 사람들은 돼지고기 한 점에도 행복을 느꼈다. 건강식이 귀하던 그때, 광업소가 나서서 광부들의 식생활까지 챙겨 주었으니 아름다운 탄광촌 풍속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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