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물은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특히 한국인의 식생활을 보면 찌개, 국, 그리고 물김치까지, 물이 들어간 음식을 즐겨 먹는다. 또한 예로부터 물과 얽힌 이야기가 유독 많았다. 싱싱한 생선을 보고 ‘물 좋다’하는데, 요즘은 ‘분위기 좋다’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한편 ‘물이 갔다’는 말은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생기가 없음을 뜻한다. 이렇게 물은 생명력과 동일시되고 있다.

물과 관련된 속담으로는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스위스 격언으로 ‘물은 생명이다.’, 핀란드 격언으로 ‘물은 가장 오래된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은 아니다. 소금기가 있는 물은 간물, 짠맛이 있는 우물물은 여물, 강이나 호수의 짜지 않은 물은 민물, 칼슘과 마그네슘 성분이 많은 물은 센물, 단맛이 나는 물은 단물, 마신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없는 물은 헛물이라고 부른다. 또 맛도 모르고 무턱대고 들이키는 물은 벌물, 끼니 때 이외에 먹는 물은 군물, 마실 수 있는 우물물은 먼물, 잠자리에 머리맡에 준비하여 두는 물은 자리끼라고 한다.

그 외에도 끓이지 않은 물은 생수, 약효가 있는 샘물은 약수, 자연수를 증류하여 불순물을 제거한 물은 증류수, 수심 200 m아래 심해의 무공해 바닷물을 이용해 만든 약수인 심해수, 수돗물을 전기분해해서 알칼리와 산성으로 나누어진 물은 이온수, 여과기를 통과한 깨끗한 물은 여과수라고 한다.

물에 얽힌 이야기로는 대동강 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일화를 빼놓을 수 없다. 봉이 김선달은 평양에 한양의 장사꾼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대동강을 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사대부 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대동강 나루터의 물장수들이 있었다.

김선달은 이들에게 술을 대접하며 엽전을 나눠준 뒤 대동강 물을 길어 갈 때마다 자신에게 그 돈을 내도록 했다. 평생을 가도 마르지 않을 대동강이야말로 밑천 하나 들지 않는 돈벌이라는 생각에 그 사업을 탐냈다. 그리하여 김선달은 황소값 60마리에 해당하는 4,000냥에 대동강을 한양의 장사꾼에게 팔았다.

물장수 중에서 북청 물장수가 제일 유명하다. 긴 막대기 양쪽 끝에 물이 담긴 나무통을 어깨에 짊어지고 다녔다. 1800년대 중반 함경남도 북청군 신청읍에서 약수터 물을 길어 이웃집에 팔던 북청 물장수는 점차 규모를 키웠다.

일제 강점기에 북청 물장수의 아들이 경성제국대학에 합격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북청 물장수의 조합에서는 이준 열사를 비롯해 뜻있는 인재를 장학생으로 지원하기도 하였다.

태백 지역에는 북청 물장수 같은 황지연못 물장수가 있었다. 황지연못 물장수들은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의 물을 길어다 팔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존재한 황지연못 물장수는 20여 명이나 되었으며 그 중 천영모 씨 3남매가 최고 규모였다.

황지연못 물은 주로 요정인 대구관, 유락장, 우리장, 산수장 등에 공급되었다. 물은 드럼통 두 개를 연결해서 손수레에 싣고 배달하면서 드럼통 밑에 달린 수도꼭지를 통해 물을 팔았다. 일반 주민들은 길어 먹었지만 병원, 요정, 식당 등에서는 물장수로부터 공급받았다.

황지연못 옆에는 지붕을 씌운 우물이 있어 물장수나 일반 시민들 모두 이 물을 이용했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렸으므로 한 사람씩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장수가 늘어나면서 서로 물을 빨리 뜨려는 먼저 잡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한겨울에는 서로 밀치다 얼음판에 미끄러지는게 예사였다.

물장수들은 모두 힘께나 쓰는 사람이거나 동네 건달들이었으므로 아침 시간에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일반 주민들은 두레박 잡으려는 엄두조차 못 냈다. 그 중 덩치도 크고 주먹이 센 천씨네가 제일 강했다.

태백에서는 천씨네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씨네가 물을 운반할 때는 기운 센 천씨가 끌었고 누나와 여동생은 뒤에서 밀었다.

당시에는 도로사정이 나쁜데다 겨울에는 땅까지 얼어붙어 더 어려웠다. 특히 겨울철에는 밀던 사람이 넘어지면서 물통 모두가 넘어져 낭패를 보았다. 어쩌다 물장수가 병이 들거나 다쳐서 물을 못 길어 가면 물을 받던 사람들이 찾아와 통 사정을 하곤 했다. 20~30명씩 아가씨를 거느린 요정 같은 데서 물을 못 받으면 요리는 고사하고 아가씨들이 씻지를 못해 장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당시 물값은 물은 많이 쓰는 집에서는 월정액으로, 가끔 받는 집에서는 물통값으로 지급했다. 1960년대 중후반 작은 양동이 한 통에 20~25원(2009년 물가 기준 2,000원)을 받았는데 언덕이 있거나 먼 곳은 조금 더 비쌌다. 여름보다 겨울의 물값이 더 비쌌다.

황지연못 물을 팔던 물장수는 상수도 공급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황지연못 물을 사서 먹던 황지 지역 주민들은 광동댐으로부터 식수를 공급받았다. 광동댐 식수가 공급되고서도 황지 주민들은 소독약이 첨가된 수돗물보다는 낙동강 발원지의 수질 좋은 황지연못 물을 그리워했다. 1993년 민방위 급수 시설로 황지연못 급수대가 만들어지면서 황지 주민들은 다시 연못 물을 길어 마시기 시작한다.

하루 300톤이 용출되는 황지연못은 가뭄이나 장마 때도 영향을 받지 않는 영험한 물이라 하여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또 낙동강 발원지를 보려고 황지연못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태백의 정기를 받는다면서 한 모금씩 마시고 간다.

오늘날의 황지연못 물은 물장수가 있던 시절에 비하면 절반으로 줄었다. 탄광 개발로 지하 물의 맥이 끊기면서 수량이 줄었거나 연못 인근에 건물을 지으면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황지연못의 물장수가 사라지고 탄광촌이던 도시가 관광지로 바뀌며 세상이 변했어도 물맛 만큼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