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북한의 송전 중단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남한을 구원한 것은 석탄과 철도였다. 전력생산은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발전소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남한의 최대 석탄생산지는 삼척탄광의 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였으며 인접 지역에 영월화력발전소가 있었다. 그런데 탄광이 개발된 곳은 대개 험준한 산악지형이어서 인접지역이라 하더라도 석탄을 공급할 수 있는 도로나 철로 등의 교통시설이 없었다.

국내 전력공급에 대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서 수송에 겪는 어려움은 태백의 석탄이 영월로 수송되는 과정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태백이나 삼척의 생산지에서는 철로를 통해 묵호항으로 석탄을 수송했다. 그런 다음 묵호항에서 석탄을 선적한 후, 미군 LST 수송선을 동원하여 남해를 거쳐 인천으로 운반했다. 인천에서부터는 철도를 이용하여 영월발전소까지 수송했다. 영월은 바로 옆에 붙은 지역인데도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교통망을 만들 수 없었으므로 한반도 전체를 한 바퀴 빙 돌아서 가야 했다.

묵호항에서 인천까지 배로 수송하는 데만도 3일씩 소요되었으니 산업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수송에 의한 교통망 부족이었다. 정부에서는 석탄 증산을 추진하면서 가장 먼저 수송을 위한 철도 부설 작업에 착수했다. 석유에너지는 꿈도 못 꾸던 시절에 석탄은 국가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에너지 자원이었다.

정부의 정책은 국내 최대의 석탄매장량을 지닌 태백과 삼척 탄광지역을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석탄산업의 활성화 정책은 탄광개발에 대한 지원도 지원이거니와 철도망 확충이 최우선이었다.

태백지역의 석탄수송을 위해 가장 시급한 영암선·함백선·태백선 부설공사를 시작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중단된 때를 제외하고는 철도공사는 계속되었다.

1953년 9월 육군 공병대의 지원을 받아 시작한 영월선 공사는 1955년 12월 영주-철암 간 86.4km구간이 준공되었다. 1949년 5월 착공된 함백선은 제천-영월 구간의 38.1km가 1956년 1월 개통, 영월-함백 구간의 22.6km가 1957년 3월 개통되었다. 제천-태백 간의 태백선은 1973년 10월에 완전히 개통되었다. 태백선의 추전역-고한역 구간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장 터널인 정암터널이 개통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6? 25 한국전쟁 직후의 어려운 국가 상황 속에서도 서둘러 태백 철암에서 경북 영주를 잇는 영암선(영주-철암)을 개통한 것은 그만큼 태백의 석탄 개발이 국가의 경제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 산업임을 입증한 셈이다. 1956년 1월 16일 첫 운행에 맞춘 기념비 제막식에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참석까지 한 걸 보더라도, 철도개설을 통해 석탄산업 발전에 기대를 거는 국가 정책을 확인할 수 있다.

제천-태백-도계, 도계-철암-영주를 잇는 철도 개설은 석탄산업을 발전시키는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특히 영암선의 개통은 우리나라 최대 탄광지대인 태백과 도계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국내 최대의 석탄 매장량을 지녔으면서도 운송 불편으로 개발이 지연되던 태백과 도계 지역의 탄광발전에 견인차 구실을 했다. 영동선 개통으로 삼척 지역을 비롯한 강원도 일대의 탄광들이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떠올랐다.

선박으로 3일이나 걸리던 수송기간이 영암선 개통으로 서울 청량리역까지 하루로 단축되었다. 철도를 통한 석탄 수송이 활발해지면서 탄광의 기계화도 빨라졌다.

운송의 측면만 보더라도 사다리를 통해 석탄화차 위로 사람이 직접 등짐을 져서 나르던 석탄 수송 작업이 선탄장에서 화차를 직접 연결하는 컨베이어 벨트로 대치되었다. 철도를 통한 많은 양을 신속하게 수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송비용도 10분의 1로 절감할 수 있었다.

철도의 개통으로 태백 지역의 석탄생산량은 해마다 늘어났는데, 1955년 80톤에 불과하던 생산량이 1959년에는 282만 톤으로 급상승했다. 석탄 생산량의 증가는 광부 고용의 중대와 직결되었다. 1960년 삼척군 상장면에서 상장읍으로 승격한 태백 지역은 인구가 3만 5,000여명에 달했다.

철도는 탄광지역으로 노동자가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인적자원의 유동을 원활하게 하면서 탄광지역의 발전을 앞당기는 원동력이었다. 영암선이 개통되면서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태백이나 도계 탄광지역에 경상도 출신이 많은 것은 영암선 철도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철도 개설로 지역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태백과 삼척 지역은 인구가 급증하였다. 1981년 7월 1일에는 삼척군에 속해 있던 황지읍과 정성읍이 태백시로 승격한다. 또한 도계읍을 중심으로 한 삼척군, 삼척군청을 중심으로 한 삼척시가 별도로 분할한다. 그리고 삼척군 북평읍이 묵호읍과 만나 동해시로 승격한다. 1980년 한 개의 삼척군이 네 개의 시·군으로 분할되는 우리나라 행정상 전무후무한 사례는 철도가 미치는 석탄산업의 위력을 입증한다.

또 전국 최대 규모의 탄광도시를 자랑하던 태백시와 삼척시가 우리나라 시 중에서 가장 많은 기차역 보유 기록을 놓고 1위와 2위를 주거니 받거니 했으니 철도와 탄광도시의 밀접한 인연을 보여 준다. 삼척시는 삼척역·도계역·흥전역·신기역·삼척해변역(구 후진역) 등 2009년에도 활용되는 역을 비롯해 심포리역·나한정역·고사리역·하고사리역·마차리역·상정역·미로역·도정역 등이 물자와 인력 수성에 이바지했다.

태백시에는 태백역·문곡역·백산역·동백산역·통리역·추전역·철암역·동점역 등 여덟 개가 있다. 태백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철마가 느릅령을 넘어오면 검은 흑면장군이 수만 백성을 먹여 살릴 것이다’라는 미래를 예언하는 말이 전해졌다. 통리고개의 옛 이름이 느릅령이며, 석탄을 실은 기관차가 얼굴 검은 흑면장군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일치된다. 또한 석탄을 실은 기차는 광부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핵심 에너지원인 석탄 수송을 통해 만백성을 먹여 살렸으니 태백 지역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다.

철도의 개설은 석탄산업 발전을 통해 우리나라 모든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철도는 태백·삼척·정선·영월 등 탄광 지역의 석탄산업 발전과 운명을 함께한 탄광도시 발전의 은인이다. 탄광촌 주민들의 애환과 사연을 싣고, 또 석탄을 싣고 달리던 탄광촌의 기차는 1990년대 이후부터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잠시 주춤했다.

2000년대 들어 탄광촌의 기차는 다시 새로운 희망을 향해 달리고 있다. 태백·정선 지역을 찾아오는 기차는 눈꽃 열차·스키 열차·단풍 열차·정선 5일장 열차 등의 이름으로 폐광촌을 위로하며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