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들이 탄광에 취직할 때 평생직장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저 3년이나 5년만 일하고 퇴직하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길이다. 광부들은 출근하기 싫은 날마다 “당장 때려치우겠다”고 말했고, 아내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남편의 푸념까지 받아 주고 설득해야 하는 광부 아내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다.

그 보다 더 가슴 졸이는 일은 갱내 사고였다. 탄광 사고가 났다는 소문이 들리면 가슴부터 철렁했고,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에 난 사고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안한 가슴으로 살다보니 광부도 아내도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탄광사고가 상존하다보니 안전이 제일 소중했다. 사택마을이나 광업소 근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빠, 오늘도 안전!’이라는 표어였다. 이 글귀는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과 함께 대형 포스터로 나붙었다. 안전에 대한 표어가 많은 것은 생사의 갈림길에 처한 광부들의 생활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탄광촌을 잿빛도시라고 부른다. 도시를 덮는 탄가루, 광부들 삶 속에 파고든 죽음의 그림자, 가난의 삶과 폐허 같은 도시 분위기 때문이다.

감옥 같은 지하 수백 미터 검은 벽의 막장에서는 죽음의 위협과 캄캄한 어둠뿐이다. 막장에서는 광부들이 죽어나가고, 밖에서는 진규폐 직업병으로 광부들이 죽어갔다. 채탄막장의 잦은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때마다 ‘일터인지, 전쟁터인지 모르겠다.’라는 푸념이 쏟아졌다.

갱구를 들어갈 때는 산 사람만 들어갔는데 나올 땐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나왔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막장이었지만 광부들조차 삶의 갱구인지, 죽음의 갱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탄광노동은 노동 강도가 가장 높고, 사망 재해율도 가장 높다. 게다가 직업병까지 있어 죽음의 노동이라고 부른다.

탄광노동 현장에는 낙반, 붕락, 출수, 가스폭발, 운반사고 등의 각종 재해가 도사리고 있다. 1976년부터 1985년까지의 탄광사고 사망자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붕락사고가 50%로 가장 많았다.

또 케이빙 작업 때도 사고가 잦았다. 케이빙 작업이란 진행하던 막장이 막혔거나 광업소 계획에 의해 채굴을 중단할 때 뒤로 후퇴하면서 발파를 하여 탄맥을 무너뜨리며 탄을 캐는 작업이다.

낙반사고라든가 케이빙 작업 사고는 노동자의 부주의보다도 안전시설 미비로 말미암은 환경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탄광업은 타 산업보다 재해발생률과 사망도수가 월등히 높다. 1980년대 전체 산업노동자 600만 명 중 광부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5%이하였으나, 탄광사고 사망자 비율은 평균 14%에 이르렀다. 탄광노동자의 재해율은 일반노동자의 10배에 달한다.

탄광의 높은 재해율은 기계화의 미비, 지하막장의 열악한 작업환경, 도급제로 말미암은 무리한 노동, 생산이 우선되는 증산정책 등에서 기인된다.

안전사고는 대개 관리자가 현장에 없거나 생산이 몰아칠 때 생겼다. 보안법을 지켜가면서 일하면 대형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한국의 탄광노동자 사망재해 도수율이 일본의 10배, 필리핀의 5배라는 1983년의 ILO보고서는 우리나라 탄광의 열악한 실정을 증명한다.

석탄 증산이 최고의 경영 목표이던 1960~1980년대, 정부와 탄광업체에서는 생산력 극대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탄광 측에서 생산량을 지나치게 독려하다 보면 안전에 대한 주의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안전보다 생산이 우려되던 때 생산 현장에서는 ‘선 생산, 후 안보’라고 불렀다. ‘선 생산, 후 안보’ 식의 생산독려는 광부들에게 안전 불감증과 노동의 강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통계에 의하면 1980년부터 2003년 말까지 1만 3,000명의 탄광노동자들이 재해와 진폐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폐광 이후에도 직업병인 진폐증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피로 얼룩진 석탄산업사, 죽음의 노동 현장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탄광의 사망사고가 가장 잦던 1970년대에는 막장에서 목숨을 잃는 광부 수가 한해 230~250명에 달했다. 1980년대의 사망자는 한 해 평균 160명이 넘었다. 1990년대 들어 사망자의 수가 줄어든 것은 폐광으로 광부 수가 줄어든 데 대한 상대적인 감소일 뿐이다.

탄광의 매몰사고가 있거나, 사고 희생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곤 했다. 탄광매몰 사고로 구조 시일이 길어지거나, 대형 사건일 때는 전국의 기자가 탄광촌으로 몰려오며 언론매체가 떠들썩했다. 대통령이 생존자에게 축전을 보내거나,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구조된 광부를 직접 위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석탄공사 은성광업소에서 발생한 갱내 화제로 44명이나 사망한 일은 언론에 제대로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국내 최대의 탄광사고이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 것은 사고일이 1979년 10월 27일이기 때문이다.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바로 다음날에 일어난 탄광사고였다.

언론들은 부하의 총에 맞아 숨진 독재자 대통령의 죽음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런 사이에 한꺼번에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광부의 존재는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채 쓸쓸하게 사라졌다. 44명의 영혼과 유가족들의 한은 아직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석탄을 캐내려고 많은 영혼이 숨져갔다. 석탄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는 석탄이 된 식물의 매몰뿐만 아니라 광부의 매몰을 요구했다. 석탄의 화력이 다 끝난 뒤 연탄재로 부서지는 운명처럼 석탄을 캐고 난 광부들은 막장 속으로 파묻혔다.

쓰임새를 다하고 폐기처분되는 연탄의 움명과 막장에서 매몰되어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광부의 삶이 어딘가 닮아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막장 속에다 목숨을 버려야 했던 수천 명의 광부들, 그들의 불우한 삼은 한국 산업사의 질곡으로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