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관리가 채탄 작업 현장을 찾아가는 곳은 개선된 시설인 ‘관광노보리’일 뿐이다. 경사진 막장 갱도를 노보리라 하는데, 관광노보리란 외부 손님들을 안내하는 작업 조건이 좋은 작업장을 말한다.

관광노보리를 다녀온 정부 관리는 광업소에서 미리 뽑아놓고 며칠 전부터 대답 훈련까지 마친 노동자와 대담을 한다. 그런 자리에는 으레 가장 월급을 많이 받는 광부가 참석한다. 그때 정부 관리는 선발된 광부들에게 월급을 물어보는 것이 유행이었다. 광부의 얘기를 듣고 난 장관은 “막장생활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만하면 월급은 괜찮은 편이군” 말했다.

광부들은 관광노보리를 가리켜 호텔 수준의 막장이라고 한다. 관광노보리를 두어 시간 견학하고 나서도 힘든 막장이라고 표현한 정부의 고위 관리는 진짜 채탄막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언론들도 마찬가지로 진짜 막장은 구경도 못했으니,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료 화면을 보면 서서 일하는 현장뿐이다. 배밀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노보리를 기어서 올라가는 광부들의 작업현장이 진짜 막장이다. ‘관광 노보리’로 불리는 작업여건이 좋은 채탄 현장을 열악한 환경이라고 보도했으니 정작 막장의 참혹한 진실은 묻혀버렸다.

정부 관료들은 광부들에게 있어 쾌적한 작업 환경이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좋은 막장 즉, 관광노보리를 견학하고서 탄광정책을 결정했다. 광업소에서 최고 봉급자를 만나 급여를 물어본 뒤 전체 광부들의 사정이거니 짐작한 것이 끝이었다. 경리과로부터 전체 광부들의 급여명세서를 받아 평균을 내는 그 쉬운 작업은 왜 안 했던 것일까?

광업소가 미리 선발한 광부와 만나 각본에 짜인 대화를 하느라 진짜 이야기는 듣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이왕 현장을 방문한 것이었으니 지나가는 광부 아무나 붙잡고 몇 마디만 물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대화를 왜 안 나눴을까? 혹은 사택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광부의 아내 몇 명 하고만 얘기해보아도 광부들의 삶을 알 수 있을 텐데 왜 하지 않았을까?

광업소는 장관의 방문 일정이 잡히면 광부들이 아무 문제없이 잘살고 있으며, 산업전사 산업역군으로서 국가에 충성하겠다는 얘기만 하도록 훈련했다. 광업소 측은 장점만 얘기하도록 치밀하게 각본을 짰고 모의훈련까지 하곤 했다. 장관은 정말 속은 것일까? 아니면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아 외면했던 것일까? 장관이 광업소를 방문하는 것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그런데도 장관은 ‘인의 장막’에 갇혀 진실을 보지 못한다. 책상머리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서울에서야 오죽할까 싶다.

장관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같은 현장체험 때문에 탄광현장과 탄광촌은 왜곡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탄광촌을 황폐화시킨 것은 탄광지역 자체가 아니라 언론과 대중매체였다. 신문, 텔레비전, 영화, 잡지 등은 탄광촌의 실상을 왜곡하고 과장하여 전달했다. 탄광촌을 깡패와 창녀들이 우글거리고, 인생낙오자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묘사했다. 광부와 가족들의 술, 도박, 성에 관한 건전하지 않은 면을 부각시켜 왔다.

물론 심심풀이 화투가 도박으로 커지면서 탄광촌의 사회문제로 등장하자 광업소에서 정화운동을 벌인 적도 있다. 이런 현실은 어느 지역에나 일어나는 현상인데, 탄광촌의 전체 문제인양 보도하는 것이 문제였다.

탄광노동자들이 술집이나 심심풀이 화투판으로 빠져드는 것은 여가를 선용할 수 있는 마땅한 문화공간과 후생복지시설이 전무한 데서 비롯됐다. 언론매체는 문화 공간 확충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선정적 보도만 일삼은 것이다.

탄광촌의 뉴스란 탄광 사고로 굴속에서 죽어 나오는 광부들뿐이었다. 노동자들의 노동운동마저 불순한 일부 세력들에 의한 난동으로 오인시켰다. 탄광촌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전국에 인식되었다. 다음의 기사를 보면 언론이 탄광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탄광촌 어린이들이 탄진공해 속에서 보고 듣는 것은 단조로운 탄광생활에 관한 것뿐이다. 꼬마들은 흙더미를 굴처럼 파놓고 나무 꼬챙이를 꺾어 동발(지주목)을 세운 뒤 모의 갱을 만든다. 고무신에 흙을 담아 손으로 밀어 굴속을 들락거리며 ‘덜거럭 덜거럭’ 탄차 지나가는 흉내를 낸다.(《○○일보》,1980. 4.25.)

물론 있음 직한 얘기겠지만, 탄광촌에 사는 사람조차 그런 글을 읽다 보면 북한의 ‘아우지탄광’ 얘기가 아닌가 생각날 정도이다. 물론 북한의 ‘아우지 탄광’ 이미지 상당 부분도 남한에서 만들어낸 것이지만 말이다.

탄광촌을 다룬 책 중에서는 “폐석더미에서 놀다가 진폐에 걸리기도 한다.”거나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진폐에 걸리는 일이 많다.”는 글들이 눈에 띈다. 폐석더미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진폐에 걸렸다는 내용은 과장된 내용이다. 저탄장이 아니라 폐석장에서의 진폐는 과장되었다.

수송의 편리를 도모하려고 기차역 인근에 만들어 둔 저탄장은 근처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저탄장은 방진시설이 좋지 않기 때문에 저탄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탄가루로부터 위협을 받았으며, 진폐 발병 확률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비해 폐석장은 탄광에서 캐낸 못쓰는 암석을 처리하는 곳이었으므로 산 중턱이나 외진 곳에 있다.

폐석장에는 열량 낮은 석탄이 섞여 있어 이를 얻으려고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일부러 가기도 하지만 자주 놀러 가는 장소가 아니다. 또 폐석장에는 돌무더기가 많아 저탄장만큼 탄가루가 많지 않다. 폐석장의 먼지 역시 몸에 나쁘며, 놀이 환경이 좋지 않은 것만큼은 사실이지만 놀이 삼아 탄가루를 접했다 하여 진폐에 걸린다는 기록은 과장된 표현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