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의 지하 깊이도 자주 과장하여 표현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다음은 베스트셀러였던 책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얼마 전에도 사북의 동원탄좌 막장이 무너져 두 명이 숨지고 8명이 갇혔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 사고 지점이 지하 8km라고 하는데 깊은 곳은 17km 속이라고 들어왔다.(『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중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지하 8km 작업장에서 탄을 캐는 광부를 떠올리게 된다. 심지어 지하 17km 깊은 곳에서도 광부들이 탄을 캐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하의 수직 깊이가 아니라 갱구로부터의 수평 길이인 것을 지하로 기록하며 과장했다. ‘지하’라든가 ‘깊은 곳’의 단어는 수직적인 의미이다. 이 과정을 통해 탄광, 탄광촌에 대한 왜곡과 과장된 이미지가 계속 조장되는 것이다.

어쩌면 저자는 과장된 지하의 8km 혹은 17km의 까마득한 깊이를 통해 광부의 노동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부화 된 곳이라야 지하 1,000m를 갓 넘어서 작업하는 장성광업소뿐이다. 위의 글이 처음 간행된 1990년대 중반 시점으로 볼 때 국내에서 최고 심부화된 작업장을 가진 장성광업소도 지하 1,000m에서 채탄을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지하는 내려가면 갈수록 지열이 높아지므로 ‘지하 8km’의 작업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1,000m를 넘어선 장성광업소에서는 높아진 지열 때문에 통기만을 위한 수직 갱구인 통기수갱을 별도로 설치하고, 갱내에 에어컨을 도입해 막장 온도를 낮추는 실정이다.

지하 막장의 깊이가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외부에 조금씩 왜곡 전달되고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관련 장관이나 언론이 지하 수 천 미터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라고 밝힌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탄광촌에 대한 대표적인 왜곡 사례는 검은 냇물에 빨래하는 모습이다. 광업소에 중앙세탁소가 생기기 전인 1970년대 중반까지는 광부의 아내가 매일 남편의 탄가루 묻은 작업복을 빨아야 했다. 물도 귀한 시절이니 검은 개울에서라도 빨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는 검은 냇물에서 광부의 아내들이 빨래하는 모습을 탄광촌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상징하는 풍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광부의 아내가 검은 냇물에서 빨래하는 것은 일상복이 아니라 석탄에 찌든 작업복이다. 그런데 외지에서는 모든 빨래를 검은 냇물에서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1980년대 중앙세탁소의 설립으로 검은 냇가에서 빨래하는 광부 아내의 모습이 사라졌는데도 영화와 텔레비전에서는 탄광촌을 묘사할 때마다 검은 냇물의 빨래풍경을 그렸다. 검은 개울에 모여 빨래하는 광부 아내들의 이미지 재생은 외지인들에게 ‘탄광촌은 사람 못 살 곳’으로 인식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유명한 모 월간 잡지에서 태백탄광촌의 부녀자들을 창녀로 만들어버린 일이 있다. 태백탄광촌에는 창녀가 우글거리고 가정주부의 외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통계수치까지 들먹이며 보도했다. 태백시에 거주하던 박모씨의 제보를 받아 작성된 것인데 태백시민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어이없어했다. 늘 다른 지역에도 있음 직한 사례들을 부풀리거나 왜곡하면서 탄광촌의 이미지를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술과 싸움 역시 탄광촌의 어두운 구석을 드러내는 대명사였다. 실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탄광촌에는 대낮부터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아침부터 그런 사람들이 흔했다.

탄광촌의 3교대 문화를 이해하면 당연한 현상일 뿐이다. 3교대 중 아침 8시 이후에 퇴근하는 병방 근무자는 응당 아침이 일반 직장인의 저녁에 해당하는 시각이다. 퇴근 후에 동료와 어울려 술 한잔 하면서 휴식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이었다. 아침이건, 낮이건 말이다.

1980년대 초까지 존재하던 통금(通禁)시절에도 광부들만큼은 통행금지 단속을 받지 않았다. 3교대를 위한 출근과 퇴근, 하루 세 번의 해가 뜨고 지는 곳이 바로 탄광촌이다. 그런데 외부에서는 3교대 문화는 쏙 빼놓고 그저 ‘탄광촌에는 대낮에도 술에 취한 주정뱅이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다.’라고만 비하한다.

물론 1960년대의 탄광촌은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던 적이 있다. 외지 인구가 급속도로 유입되었지만 공공질서를 지키기 위한 공권력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외부인이 탄광촌을 바라보고 쓴 글과 탄광촌 내부에서 기록한 글을 각각 살펴본다.

탄광사회는 특수한 사회로서 탄광산업전도는 산업전도 중 산업전도라 할 수 있다. 불량배와 살인 강도 등 전과자들의 은신처요 실업자들이 마지막으로 살길을 찾아드는 곳이다.

술집은 밤낮으로 꽉 들어차 있고 밤이면 살벌한 공포분위기가 온통 탄광사회를 짙은 어둠으로 만든다. 돈이 없고 불경기일수록 술집은 만원을 이룬다. 돈이 있으면 술을 마신다. 투전을 한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으면 때려 치고 부순다. 돈이 떨어지면 탄을 캐는 막장을 찾는다. 현대 문명의 탈락지대라 할까, 문명이 이들을 버린 건지 이들이 문명을 이탈한 것인지 문명에 반항하는 자들임에 분명하다.(신종혁, 「한국 탄광산업 사회와 선교문제」,『기독교사상』129호, 대한기독교서회, 1969. 2, p.112.)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북읍과 고한읍 탄광촌의 유일한 공공기관은 사북 초등학교 뿐이었고,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면서 갖가지 사고와 폭력이 난무하였다.

1964년 정선경찰서 사북지서가 생겼지만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채 일부 지역, 특히 고한리 박심리 지역처럼 산골 오지의 탄광마을은 폭력배들이 장악하였다고 한다. 사북지서가 생긴 이후 매일 20여 건의 사건 사고를 처리했는데 이중 대부분이 폭력, 사취사건 등이었다.

이들 폭력배들은 박정희 정권의 사회정화정책을 피해 산골로 숨어들었던 이들로 탄광이 활성화되면서 또 다른 토착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일부 탄광에서는 이들을 하청업체, 덕대업자로 고용하면서 자신들의 보호막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정선군 석탄산업사』, 정선군, 2005, p.306.)

탄광촌은 1970년대 들어 법적 질서가 잡히고 도시 규모를 갖췄지만 여전히 외부사회에는 범죄자의 도피처, 탈선청소년과 탈선주부의 온상, 창녀와 기생들이 우글거리는 곳, 간첩들이 살기 좋은 곳 등으로 알려졌다. 또 경제력을 상실한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이유에서 인생낙오자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알려졌는데, 인생의 낙오와 경제적 낙오는 구분되어야 한다. 탄광촌 사람이 가난하다 하여 그들이 지닌 삶의 철학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1999년 개봉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 감독, 박중훈, 안성기, 장동건, 최지우 출연)에서는 탄광촌을 범죄자의 도피처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 이 영화는 태백에 소재한 광업소를 배경으로 폭력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탄광촌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조작은 광부들을 다른 사회와 고립된 지역으로 묶어두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광부는 외부지역과 소통이 단절된 채 석탄증산에만 몰두하는 기계 인간으로 전락했다. 민주화와 더불어 경제발전이 이뤄지고 나서도 탄광노동자의 인권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로, 탄광촌은 여전히 가난한 자들의 도시로 방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