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철암, 황지, 통리, 고한, 사북, 도계 등지의 탄광촌에는 광부가 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탄광이 늘어나고, 석탄생산량이 늘어나면서 탄광촌은 호황을 맞았다. ‘지나가는 강아지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실상을 잘 대변한다. 만 원권은 1973년 최초로 발행된 이래 2009년 5만 원권이 발행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지폐의 최고 액면가 아니었던가. 그 돈을 강아지가 물고 다닐 만큼 흔했다는 얘기다.

광부의 생활 속에 빠르게 스며든 것은 상업적 향락문화였으며, 탄광촌에서 가장 돈 잘 버는 곳은 속칭 물장사들이었다. 광업소 주변이나 사택으로 가는 길목마다 술집이 들어섰다. 고된 노동에서 돌아오는 광부들을 제일 먼저 반갑게 맞는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애교 섞인 웃음을 뿌리는 작부들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술집은 탄광촌에 즐비했다. 태백시의 경우 (구)철암 역 앞, 통리역 주변, 화전삼거리 주변, 장성의 화신촌 지역 등은 대표적인 술집 골목이었다. 도계지역은 도계역 주변으로 술집이 즐비했다. 네다섯 평밖에 안 된 술집이라도 젊은 작부 4~5명을 두고 있었다. 탄광촌은 한국의 텍사스로 불리면서 밤까지 점점 화려해졌다.

광부들은 퇴근길에 매일같이 술을 마셨으므로 탄광촌에는 많은 술집이 필요했다. 육체노동자들이 노동 후에 술을 즐기는 편이지만 광부들이 술을 즐기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탄가루를 마시는 광부들에게 생기는 직업병인 진폐증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광부들은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나면 탄가루가 씻겨나간다고 믿었으므로 퇴근 후에 마시는 술을 보약처럼 여겼다.

술집에 들르지 않고 집으로 곧장 퇴근한다 해도 아내가 나서서 막걸리 한 사발부터 건넨다. 어쩌다 남편이 “오늘은 술 생각이 없다.”고 해도 광부의 아내는 “당신 건강을 생각해서 한 잔 마셔둬요.”라며 권했다. 갓 입사한 광부의 환영식에서 ‘술을 못 마신다’는 신출내기에게 ‘진폐증 안 걸리려면 퇴근 후에는 막걸리 한 사발씩은 꼭 해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또 당시로선 비싼 안주이긴 했어도 돼지고기 안주를 제일 많이 찾았다. 이 역시 탄가루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에서였다. 돼지고기가 폐에 쌓인 공해물질을 중화시켜주고 체내 중금속을 흡착해 배설하는 효과가 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돼지고기의 불포화 지방산이 탄산가스를 중화해 폐에 쌓인 공해물질을 중화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광부의 아내는 남편에게 돼지고기를 먹이려고 쌀까지 내다 팔았다. 쌀과 바꾼 돼지고기는 아이들 몰래 남편의 밥상에만 올라갔으니, 고기가 귀하던 시절에 탄광촌 아내들이 보여준 사랑이다.

광부들은 탄가루를 씻어내려고 술을 마시고, 삶이 하도 절망적인 터라 술을 마시고, 술 없이는 살 용기가 없어 술을 마시고, 막장에서 죽은 동료가 생각나서 술을 마시고…,

이런저런 핑계로 매일 술을 마셨다. 광부들은 퇴근시간만 되면 누가 가자고 권할 것도 없이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단골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다른 볼일이 있어서 한두 시간 늦게 가더라도 단골집에는 늘 어울리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막장의 동료는 광부들에게 가장 좋은 술친구였다.

197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늘어난 술집에서는 ‘작부(酌婦)’, ‘매미’ 등으로 불리는 접대부를 두고 손님을 끌었다. 광부들은 이런 술집을 매밋집, 니나놋집, 작부 집 등으로 불렀다. 작부 중에는 과부들도 많았으므로 술집을 과붓집이라고도 불렀다. 작부가 없는 집은 대폿집이라 불렀다.

매미라는 접대부의 별칭에 대한 해설은 다양하게 전해진다. 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술집 앞 기둥에 매달려서 지나는 사람을 술집으로 유혹하는 모습이 매미를 닮았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애교부리는 코맹맹이 소리가 매미 소리 같아서라는 설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매미는 팔매(賣)와 아름다울미(美)의 뜻에서 나온 것으로 아름다움을 파는 사람이라고 멋들어지게 해석하기도 한다. 『소설어 사전』에서는 매미를 ‘술집 색시’나 ‘창녀’를 빗대어 하는 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편, 니나노란 ‘술집에서 젓가락 장단을 치면서 부르는 노랫가락’이거나 ‘술집에서 시중드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니나놋집에서는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젓가락 장단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는 흥겨움이 있었다. 술상마다 작부가 하나씩 앉아서 젓가락 장단을 쳐주거나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었다. 또 술을 마시다가 흥건히 취하면 술꾼도 작부도 서로 삶을 터놓고 신세타령을 했다.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위험한 채탄막장과 절망적인 삶에 대한 푸념을 술과 함께 씻어냈다. 그러면 작부가 위로한답시고 노래 한곡을 구성지게 뽑고서 광부에게 술을 건넸다. 또 작부가 살아온 서러운 생애를 얘기하다가 훌쩍이면 광부가 화답하듯 작부에게 술 한 잔을 건네주며 노래를 불러 위로하는 낭만까지 있었다.

광부들은 대체로 싸구려 대폿집이거나 니나놋집에서 막걸리나 소주를 마셨다. 니나놋집은 대체로 방 1∼2칸에 넓은 홀 1개를 둔 7∼8평 남짓한 규모였다. 탄광이 호황이던 1960∼1980년대에는 작은 니나놋집이라도 작부 서너 명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팁도 필요 없이 그저 술이나 안주를 많이 팔아주면 작부들은 고마워했다. 작부가 없는 대폿집보다는 술값이 많이 나왔지만, 고급 술집인 방석집과 비교하면 비싸지 않았으므로 니나놋집을 자주 찾았다.

3교대 작업이 이뤄지는 탄광노동의 특성상 탄광촌의 술집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자정이 지난 한밤중에도 항상 문이 열려 있었다. 24시간 영업을 한 셈이다. 가끔은 술꾼과 작부들이 술을 마시다가는 그대로 같은 방에서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자는 사람은 자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계속 마셔댔다.

퇴근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광부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들은 으레 술집에 있겠거니 여겼다. 출근 전에 잠을 자도록 해야 한다 싶으면 그제야 아이들을 단골 술집으로 보낸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술집에서는 “우리 아버지 여기 계세요?” 하면서 문을 빼꼼히 열고 아버지를 찾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술집에서 먼저 사람을 보내 가족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탄광촌의 주부들은 “남편이 퇴근하는 길에 니나놋집에 들러 여자들하고 희희낙락거리며 놀아도 아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곳은 탄광촌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탄광촌 술집에서는 술꾼, 술집 주인, 작부, 그리고 술손님의 가족까지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어울려 살았다. 아내가 단골집에 들러 외상값을 갚아주기도 하고,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는 단골술집에 찾아가 술을 적게 권하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술집에서는 단골의 건강을 걱정해 술 권하는 동료에게 통박을 주며 말려주기까지 했다.

탄광촌의 니나놋집은 광부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곳이다. 돈이 없는 날 찾아가면 외상뿐 아니라 공술을 퍼주는 훈훈한 인정도 있었다. 술집 작부들과 광부들이 서로 어려운 처지를 위로하면서 나눈 사촌 이웃 같은 정이 있었다.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술 마실 광부들이 떠나자 인정 많던 니나놋집의 작부들도 탄광촌을 떠났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니나놋집도 함께 문을 닫았다. 답답한 세상을 바라보는 탄광촌의 실직 광부들에게는 그리움만 남았다.

경기 좋던 옛 시절에 건강한 몸으로 드나들던 니나놋집이 그립다. 외상술을 주고, 돈 없을 땐 공술을 주고, 술에 취하면 잠도 재워주던 인정 있는 니나놋집, 팁도 없이 젓가락 장단에 노래 불러주던 그 시절의 작부들이 그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