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55m 고지에 자리한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이다. 추전역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역이며, 탄광촌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간직한 추억의 산마을 역이다.

추전역의 이름은 싸리밭골 언덕에 있는 역이라 하여, ‘싸리추(杻)’와 ‘밭전(田)’의 한자음에서 나왔다. 싸리밭골에서 많이 자라던 싸리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추전역에서 경북방향으로 태백의 끝자리에 있는 동점구문소의 전설에까지 닿아있다. 홍수 때 싸리밭골의 큰 싸리나무가 떠내려가다가 동점의 암벽을 치면서 현재 구문소의 구멍을 뚫었다고 한다.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포장된 도로 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국도인 두문동재와 얼굴을 마주한다. 두문동재는 일명 싸리재라고도 불리는데 해발 1,268m로 숨 가쁜 고개이다. 이 도로를 통해 만항재로 가거나 카지노로 갈 수 있다.

추전역에서 두문동재를 바라보다 보면 고려시대까지 생각이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두문동재는 고려 말 충신들이 불사이군의 충성을 외치며 경기도 개풍군 두문동을 떠나 정선군 고한지역에서 두문불출하였다 하여 붙여진 고개이다.

추전역에서 보면 모든 세상이 내려다보인다. 땅을 굽어보는 하늘과 닿아있는 추전역에 서면 늘 위만 쳐다보며 살던 삶에서 잠시 벗어나 내려다보는 여유를 갖게 한다. 역 광장에서 굽어 내려 보이는 산맥, 고요한 정경은 세상의 고단함과 시름을 모두 잊고 추전역이 지닌 높이만큼 편안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하늘 가까운 곳으로 가려고 높은 곳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해발 높은 추전역을 찾아오는 것은 위가 아니라 아래를 향하려는 마음에서이다. 추전역에는 높은 곳을 향하는 욕망이 아니라 세상의 낮은 곳을 보여주는 여유와 겸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바로 제일 낮은 땅, 지하 막장을 딛고 살아가던 탄광촌 사람들의 착한 심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첫 역인 추전역 아래로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다. 추전역 인근에는 태백산, 함백산, 매봉산 등 큼직한 작은 산들이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다. 추전역에서 먼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선로는 마치 하늘로 오르는 신선의 길 같다. 하늘과 가까운 추전역의 밤하늘은 별들도 더 많고, 초롱초롱 더 반짝인다. 또 노을지는 저녁이라든가, 단풍든 가을, 눈 덮인 겨울 등 추전역은 몇 번을 찾아가도 늘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추전역은 사람의 발길도, 짐승의 발길도 드물어 절간처럼 고즈넉하다.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추전역의 규모는 작아도 전국 최고의 타이틀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역이라는 널리 알려진 기록 외에도 우리나라 역 중에서 연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역이라는 기록이 있다. 추전역에서는 한여름인 7∼8월을 제외하고는 난방이 필요하므로 난로를 피우는 기간이 가장 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 추전역은 우리나라 역 중에서 적설량도 가장 많은 기록을 지닌다. 겨울이면 눈을 치우느라 역무원의 업무가 정신없이 바빠진다. 산도 강도 도시도 온통 검은 탄가루로 뒤덮인 태백탄광촌도 겨울이면 하얀 눈으로 채색된다. 검은 탄광도시에서 피어나는 하얀 눈꽃은 해마다 겨울을 맞는 태백 주민들조차 경이로운 탄성을 자아낸다. 검은 석탄의 도시에서 맞이하는 하얀 눈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흑백의 서정을 보여준다.

탄광촌을 둘러싼 산들이 하얀 눈으로 덮이고, 나무마다 설화가 피어나는 것을 보면 천국이란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태백(太白)은 도시 이름에서도 하얀 이미지가 담겨 있다. 게다가 한강·낙동강·오십천의 3대강 발원지의 상징성까지 더하고 나면 태백은 세상을 이룬 생명의 시원(始原)이 된다.

추전역은 1973년 10월 16일 태백선 철도 개통으로 업무가 시작되었다. 태백선은 선로 개통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했을 만큼 중요한 교통망이다. 추전역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매달 10만 톤의 무연탄을 수송했다.

서울과 도 지역으로 수송된 석탄은 얼어붙은 구들장을 따뜻하게 데우고 산업발전에 일조했다. 2009년 현재에도 태백광업소에서 생산된 탄을 수송하고 있다. 역사 건너편의 저탄장시설이라든가, 역사 바로 꼬마기차로 불리는 탄광용 광차가 석탄을 실어 나르는 추전역을 상징하고 있다.

추전역은 추전과 화전지역에 자리한 탄광의 광부들과 그 가족들이 이용하던 교통시설이었다. 탄광이 호황일 때는 추전역 부근에 만도 탄광노동자 30여 가구가 살았다. 추전역은 태백지역의 석탄산업 몰락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1995년 1월 10일 자로 여객취급을 중지했다. 2009년 기준 추전역을 지나는 열차는 30여 편이나 되지만 여행객을 위한 정차는 하나도 없다. 추전역 방문객은 도로를 통해 자동차로 찾아간다.

추전역에서 서북방 500m 지점에는 고한역으로 향하는 정암터널이 있다. 이 터널을 빠져나가면 곧장 정선 땅이다. 정암터널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신라 때의 사찰 정암사에서 이름을 땄다 정암터널은 길이 4,505m로 전국에서 가장 긴 굴이라는 점에서 개통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2010년 기준으로 정암터널보다 긴 곳은 전북 완주의 전라선 죽림온천~관촌 구간의 슬치터널 6,128m, 충북 영동~김천 구간의 황학터널 9,975m, 태백시 백산~삼척시 도계읍 구간의 솔안터널 16,240m,경남 양산~부산진역 구간의 금정터널 20,300m 등이 있다.

추전역은 1995년 5월30일 역사 옆에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 해발 855M'라고 쓴 상징석을 세웠다. 상징석은 추전역을 찾는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곳이 되었다. 추전역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 지붕 정면에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역’이란 큰 간판까지 걸었다.

추전역이 최고 해발고도라는 상징성으로 명소가 되자 태백에서는 최고라는 수식을 모든 곳에 붙이기 시작했다. 해발 1,268m의 두문동재와 1,572m의 함백산 꼭대기로 이어지는 도로를 ‘전국 해발 최고도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지정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또 이 도로 사이에 있는 해발 1,330m의 고도에 세워진 대한체육회 선수촌에다 우리나라 최고지대의 400m 트랙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해발 600~1,500m에 도시가 자리한 태백시는 우리나라 시단위 중에서는 해발고도가 가장 높다. 따라서 태백시에는 뭐라도 들어섰다 하면 최고의 기록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전국 최고를 건설하고 싶으면 태백시에다 하면 된다.’라는 우스개도 나왔다.

추전역은 여객취급이 중단되고 찾아오는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순간에 문화의 힘을 만났다. 1996년 5월 추전역은 승객이 없는 대합실을 활용해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작은 문화 공간’으로 명명하고 개소식도 가졌다. 추전역의 작은 문화 공간에는 필자의 시「추전역」을 비롯해 태백선의 개통 역사를 담은 사진, 탄광촌 그림 등이 걸렸다. 태백선 개통식 사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 커팅 장면이 담겼다. 또 물고기가 사는 연못 형 어항이라든가, 열차시각표 등 아기자기한 멋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