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라는 것은 광속에 있는 술 파는 계집들의 이름이다.
놀라지 마라. 몇 백 피트 속 깊은 탄광 속 ― 지옥 같은 곳에도 내외 주점이 있다. 포도주, 위스키, 값싼 정종… 더욱이 조선 노동자를 상대한 조선 막걸리까지 술이라는 술은 다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맛있는 과자, 고기, 무엇이나 없는 것이 없다. 이 구멍 저 구멍… 구석구석마다 요란한 운반찻길 옆마다 있다.
계집도 가지각색이다. 조선 것, 청국 것, 일본 것… 고것들은 햇빛을 못 봐서 어름더듬하는 가운데에도 검정 손자국이 난 하얀 젖을 내어놓고 아양을 떨고 있다.
지옥에 있는 여자… 이러니까 선녀가 아니고는 무엇이겠느냐.
고년들이 우리들의 하루 동안 번 삯돈을 다 갉아먹는 요마년들이지만, 그렇지만 잠깐 동안의 기쁨, 닥치는 죽음을 잊어버려주게 하는 고것들이 어째서 선녀같이 어여쁜 것이 아니냐?
(송영,「교대시간」)

탄광 갱내에 술집이 있다는 이야기는 일본의 탄광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등장한다. 한국의 탄광 갱도에는 술집은 없어도 여자광부는 있다. 여자들의 입갱을 꺼리는 탄광이었지만, 여자광부만큼은 예외였다. 여자광부들인 선탄부는 갱내에서 생산한 석탄이 운반될 때 탄 속에 섞여 있는 돌이나 나무덩이를 골라내는 중노동에 종사했다.

게다가 옆에 있는 사람의 형체를 못 알아볼 정도로 탄가루가 많아서 광부 직업병인 진폐증에 노출되어 있었다. 방진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머리카락을 보호하기 위해 머릿수건을 칭칭 감아 싸맸지만, 탄가루는 여성의 온몸을 비집고 다녔다. 자녀를 돌보아야 할 처지인데도 3교대 작업을 하느라 이중고를 겪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12년에 여성의 야간작업 금지 조약을 결의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탄광의 선탄부는 3교대로 작업했다.

선탄하는 것은 분진도 말도 못하고, 옆에 있는 사람을 못 알아볼 정도였어. 그래서 완전무장을 해. 먼저 마스크 쓰고 눈만 빼꼼히 내놓고 장갑도 두 겹으로 끼고, 머리에는 고무로 된 거 먼저 쓰고, 모자 쓰고 그 위에 수건을 쓰는 거야. 그래도 나중엔 입에서 탄가루가 나와. 3교대 하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사북청년회의소 편,『탄광촌의 삶과 애환』중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던 선탄부는 몸을 다치거나 진폐증에 걸렸다. 2003년 3월 태백중앙병원에 장기 요양 중인 여자 진폐환자가 8명이라는 수치가 선탄부의 현실을 대변한다.

선탄부의 노동여건은 열악했지만, 부녀자들의 일거리가 전혀 없는 탄광촌에서 선탄부의 취직 경쟁률은 높았다. 선탄부 중에는 가족을 탄광에서 잃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많았다. 탄광사고 후에 광업소가 보상책으로 광부의 아내나 어머니, 때로는 딸의 취업을 우선하여 보장했기 때문이다. 광업소로서는 재해 보상금을 줄일 수 있었고, 유가족들로서는 생계를 유지하는 기회를 얻는 효과가 있다. 선탄부는 사택제공, 학자금 지원, 연탄표와 쌀표 지급, 노조 가입 등 남자 광부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선탄부가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광업소에서는 특혜를 주듯 유가족을 선탄부로 채용했다.

1970년대 말까지 선탄부 중에는 처녀도 있었다. 탄광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아버지를 대신해 선탄부로 들어선 처녀 광부였다. 아버지나 남편의 뒤를 이어 광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우리나라의 탄광노동 현실과 가난한 서민의 삶을 말해준다.

대다수의 선탄부는 남편을 탄광에서 잃었으므로 탄광촌에서는 선탄부 하면 으레 과부를 떠올렸다. 남편 없는 외로움에 지쳐 있던 과부 선탄부들은 탄광에서 만난 남자와 새로운 사랑을 엮어가기도 했다. 태백시의 모 광업소에서 생긴 선탄부의 로맨틱한 사연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퇴근시간이 지났는데도 갱내에서는 두 사람이 퇴근을 안 했다. 입갱할 때는 군인의 군번표찰처럼 개인의 고유번호가 적힌 표찰을 갱구 옆 게시판에 꽂아놓고 들어간다. 이것만 보면 사고가 나더라도 누가 퇴갱을 못하고 갱 속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시각은 갑방 퇴근시간 때였으니 늦어도 오후 4시30분 전이면 퇴갱이 끝나야 할 시각이다. 이미 을방 광부들이 4시부터 작업을 시작했을 터인데 오후 5시가 지나도록 갑방근무자 표찰 자리에 두 명의 표찰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급기야 광업소에서는 사고라고 생각하여 퇴근했던 같은 현장의 갑방 조원들에게 비상을 걸었다. 결국 퇴근했던 동료가 다시 입갱하여 작업현장 주변과 사고가 날 만한 모든 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도 찾을 수 없어 저녁 7시쯤 나와서 걱정만 하고 있었다.

밤 8시쯤 되자, 찾던 광부가 선탄부와 함께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더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연인즉 갱내에서 눈이 맞은 두 사람이 작업장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막장 근처에 세워진 광차에 들어갔다고 한다. 갱내에는 다이너마이트 화약을 취급하느라 화약박스가 많았는데, 이 화약박스를 광차 속에 깔고 둘이 누웠다고 한다. 광차는 두 사람이 들어가 누우면 딱 좋을 크기였다.

광부들은 피곤할 땐 동료에게 귀띔을 해놓곤 광차에 들어가 누워 잠깐씩 잠을 자곤 했다. 그런데 이 날 두 사람은 귀띔도 없이 아무도 몰래 광차로 들어갔다. 사랑을 나누고서 깜박 잠이 든 것이 그만 퇴근 시간을 넘겨 깊은 밤이 되도록 몰랐다.

밤낮을 구별할 수 없는 캄캄한 갱내에서는 시간 개념이 없다. 그들은 갱내 광차로 마련한 러브호텔에서 달콤한 사랑을 나눈 것이다. 그 뒤로 동료들이 광차에다 분필로 하트모양을 그려놓고 러브호텔이라 불렀다.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봄꽃처럼, 그들이 나눈 정분도 탄가루 날리는 캄캄한 막장을 뚫고 피어난 사랑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