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업소 내에 중앙목욕탕이 생긴 뒤 광부들은 깨끗한 차림으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광부들의 외관이 말쑥해지면서 광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안쓰러운 마음이나 광부 아빠에 대한 자식들의 고마운 마음이 옅어졌다.

검은 얼굴과 작업복을 볼 때는 탄광 지하 막장의 고된 노동에 종사하는 광부의 노고를 늘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채탄막장의 흔적인 검은 얼굴과 작업복을 가족들이 보지 못하면서 막장 노동의 고충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졌다. 광부와 사무직을 구분할 수 없는 복장으로 출퇴근한 지 5~6년이 지나면서 가족들은 광부의 노동 현실을 잊어갔다. 가족들은 광부가 광업소에서 일한다는 것만 알았지 정확히 어떤 직종에 일하는지조차 몰랐다. 탄광에는 탄을 캐는 채탄·굴진 등의 갱내 노동자 외에도 기계 전기 등의 갱외 노동자도 많았다.

게다가 광부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가족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꺼렸다. 자녀가 “아빠, 회사에서 무슨 일 하세요?” 하고 묻더라도 그저 “응 굴속에서 일해” 혹은 “탄을 캐지.” 하는 대답이 전부였다. ‘석탄’ 하면 연탄부터 떠올랐으니, 나무에서 과일을 따듯 탄 캐는 것을 연탄 캐는 것으로 이해한 아이들도 있었다. 광부의 일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택을 나선 광부는 사택 어귀에서 기다리는 통근버스에 올라 동료와 함께 출근을 한다. 광업소에 도착해서는 중앙목욕탕 탈의실에서 안전모, 안전장화, 방진마스크, 장갑 등을 갖추고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안전등실로 가서 안전등을 갖춘다. 물론 도시락과 물통은 항상 들고 다녀야 한다. 개인 장비가 갖춰지면 안전교육을 겸한 작업지시가 내려지는 취업회에 참석해 방우리(작업구역을 뜻함)를 배정 받는다.

취업회가 끝나면 갱구 앞에서 보안 점검을 받고서 수갱의 케이지(엘리베이터 같은 기능)나 사갱의 권양기를 이용해 지하 수백 미터의 갱도로 향한다. 지하 900미터를 내려가는 장성광업소의 케이지는 3단으로 나뉘어 있어 한 번에 140여 명을 수송할 수 있다.

케이지에 내려서는 운반갱도인 넓은 갱도를 지난다. 지나는 길에 그날 세울 동발을 하나씩 메고 막장으로 간다. 채탄막장은 제대로 서기도 힘들만큼 천장이 낮은 곳이다.

  “어이 김씨, 에어 틀고 물 뿌려.”
  “어이 강씨, 노미(넷트) 갈아와!”

막장에 들어서면 탄 먼지를 줄이고 작업 장비를 점검하기 위해 선산부(숙련공)가 제일 먼저 지시하는 내용이다. 착암기, 오오거드릴, 콜픽 등의 굴착기계를 사용하며 굴착작업을 하는데, 채굴한 탄은 슈트, 로커쇼벨, 스킵, 체인 컨베이어, 에어 호이스트(권양기), 광차 등의 장비를 이용하여 갱외로 운반한다.

중식시간이 되면 광부들은 동료와 막장 근처의 넓은 지점을 택해 도시락을 먹는다. 일한 만큼 급여를 받는 도급제 작업이므로 식사 시간은 길지 않다. 오래 쉬었다가는 하루 일당에서 손해가 많이 생긴다는 생각에서 밥을 먹고 나면 곧장 작업에 들어간다. 막장을 벗어나 넓은 갱도를 찾아 밥을 먹고 다시 노보리 갱도 계단을 오르는 것이 싫어서 굶는 광부들도 있다.

보갱, 전공, 배관, 굴진, 소운반들과 생산관리자들은 제시간에 맞춰 얼마든지 먼지운반고 바람이 통하는 공간을 선택해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채탄부들이야 일단 막장에 들어서면 식사는커녕 물마시기 조차 어렵게 된다. 막힌 공간에 날벌레처럼 떠다니막힌 가루와 한증막 같은 더위 속에 케이빙까지 겹치는 날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화약연기와  가루 펄펄 춤추는 판국에 무슨 얼어 죽을 식사란 말인가?
(정환구 수기,「그날까지 마지막 광부로 남으리라」중에서)
탄을 캐는 한쪽에서는 동발 틀을 짜거나 나르는 사람들로 좁은 막장은 분주하다. 자욱한 탄 먼지 속에 안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탄을 캐는 사람들이다.

움직이지 않더라도 35℃를 웃도는 지열과 90%를 오르내리는 습도만으로도 지칠 정도이다. 장화 가득 고이는 땀을 수시로 따라내고, 속옷을 벗어 땀을 짜는 광부들이 보인다. 1980년대만 해도 아예 속옷을 벗고 알몸으로 탄을 캐는 광부들이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물통, 곧 무너질 것 같은 갱도, 냄새도 빛도 없는 가스가 존재하는 캄캄한 땅속에서는 긴장이 흐른다. 말 그대로 막장이다.

1990년대 들어 철제 동발을 활용하면서 기계화 채탄이 이뤄지고 있다. 그리하여 기어올라가는 노보리 막장이 사라지고, 동발을 짊어지지 않으니 작업조건이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석탄을 캐면 캘수록 막장은 지하로 심부화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높은 지열과 습도로 작업환경은 열악하므로 노동강도가 결코 줄어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 숨이 콱콱 막히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장성광업소는 2009년 현재 해발 -375, 즉 지하 975m의 깊이에서 채탄작업을 하고 있다. 스프링쿨러를 통해 통기가 잘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채탄막장에선 호흡마저 어렵다. 광부의 직업병인 규폐증을 예방하기 위해 방진마스크까지 착용했으므로 호흡은 더 힘든 지경이다. 다음은 광부의 수기 중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