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태백탄광촌에 살아도 서로 모르는 얘기가 많다. 탄광도시는 행정단위 중심보다는 광업소 단위의 촌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2006년 개최된 탄광학술세미나 때도 그런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날 필자가 태백탄광촌에 얽힌 금기를 발표하였는데, 이에 흥미를 느낀 청중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 중 한 명은 탄광촌에 얽힌 얘기들을 몇 개 더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광업소에서는 탄광노동자 뿐만 아니라 아내의 춤바람과 화투 같은 도박을 단속했으며, 어기면 광부 남편을 징계한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바로 그때 태백시 공무원 한 사람이 나서서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도 탄광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전제한 뒤 광업소가 아내의 춤바람이나 도박까지 단속하는 것은 들어본 바도 없다고 반박했다.

확실히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본 것만 믿을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필자는 광부 아내의 춤바람이나 화투놀이의 단속에 대해서는 소문 정도가 아니라 당시 광업소가 발행하는 월급봉투 뒤에 적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 공무원은 “직원의 아내 사생활까지 문제 삼는 회사가 어디 있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라면서 상식을 들추며 반박했다.

광부 아내의 춤바람과 화투단속 이야기, 그리고 단속을 월급봉투에 다룬 광업소는 소규모 탄광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장성광업소, 도계광업소 등 석탄공사 산하의 광업소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마땅한 부업거리나 문화생활을 찾지 못하던 탄광촌 주부 중 일부 철없는 아내들이 술, 도박, 춤, 잦은 외출로 시간을 보내면서 탄광촌 사택의 문제점으로 등장했다. 급기야 광업소 차원에서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나섰다.

탄광촌은 탄광이라는 단일산업으로 도시가 이뤄져 있으므로 사택가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였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기구는 항상 광업소였다. 1980년대 후반까지 광업소에서는 분기별로 부녀자들을 불러 가족교육, 경제교육, 국가관과 기업관 교육 등을 정기적으로 시행하던 터였다.

장성광업소에서 광부 가정에 보내는 <가정통신문>을 보면 당시 실상이 잘 드러난다. 급여 봉투 뒷면에 적힌 통신문에는 ‘1. 재해가 개인에게 주는 영향, 2. 의식개혁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3.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길’ 등을 담고 있다. 2항의 의식개혁에 관한 세부 내용을 보면 화투놀이와 춤바람에 대한 경고와 그에 대한 처벌 의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화투놀이와 춤바람은 부부간에 불화의 씨앗이 되어 결국 행복했던 가정을 불행과 파탄으로 몰고 옵니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더불어 보다 잘 살아보려고 수백 미터 지하의 어둡고 숨막히며 무덥고 위험한 곳에서 탄가루를 마셔가면서 피땀 흘려 벌어들인 소중한 돈이며 정성인데 복에 겨운 몇몇 주부는 자기의 처지와 분수를 모르고 있어 직장의 한가족이며 의식개혁의 차원에서 그대로 방관할 수 없어 과연 그들이 누구누구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량한 종업원의 가족을 보호하고 또한 그들의 불행을 예방 선도해야 할 의무와 도의적 견지에서 앞으로는 그들에게 응분의 조치를 취할 생각입니다. 화투놀이와 춤바람은 결국 본인과 가족 모두의 불행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임을 명심하여 화투놀이와 춤바람을 우리들의 주변에서 추방합시다.(장성광업소, <가정통신문> 중에서)
당시 이러한 가정통신문은 급여봉투 뒷면에 인쇄되거나 별도 용지로 제작 배포되었는데, 1980년대 장성광업소의 또 다른 가정통신문을 보면 3대 악 추방운동을 시행하면서 버려야 할 요소로 춤, 도박, 관광계를 꼽고 있었다. 그업소의“선도 및 오염방지를 위하여 도박, 관철저히 조사 중에 있으니 이웃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지금 곧 자기소속이나 노무과에 신고합시다.”라고 인쇄물을 통해 홍보했다.

광업소에서는 직장정화위원회를 만들어 감시에 나섰다. 처벌 대상자는 ‘종업원 및 가족’이라고 사전에 분명히 밝힘으로써, 광부뿐 아니라 아내까지 해당한다는 것을 명시했다.
월급봉투 뒷면의 가정통신란에서는 정화추진방법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직장정화위원 및 지역정화위원 합동으로 암행단속(매일 주야간), 가정선도 상담실 운영(사무부소장실), 퇴폐근절 추방을 위한 웅변대회 개최” 등을 내세우고 있다.

장성광업소에서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위반자에 대해 “소속 또는 직종변경, 사택에서 추방, 사택 미가입자가 적발 신고될 시는 사택입주권 주지 않음, 기타 후생복지 혜택을 지원하지 않음” 등을 경고하면서 종업원과 가족의 상습퇴폐 행위자 1차 적발자의 수를 공개했다. 1983년 장성광업소는 장성지역에서 춤(남4, 여9), 도박(남2, 여6), 음주 소란(남3, 여1), 철암지역에서 춤(남1, 여11), 도박(남9, 여4) 등 총 50명을 적발했다. 이 수치를 통해 광업소가 노동자의 사생활뿐 아니라 광부 아내의 사생활까지 감시 감독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통신문 관련 자료는 삼척문화원이 2001년에 발간한 『실직문화』12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성광업소에서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방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길
① 먼저 일어나라.
② 나중에 자라.
③ 말을 부드럽게 하라.
④ 공손하라.
⑤ 의견을 말하고 판단을 기다려라.

1980년대 후반까지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길’ 같은 가정교육을 할 만큼 탄광노동자와 가족에 대한 광업소의 장악력이 막강했다. 여자는 늘 남자를 섬기도록 교육되면서 ‘여자는 출근하는 남자의 앞길을 가로지르지 않는다.’라는 금기가 공고해지고, 광업소는 남자인 노동자들을 통제함으로써 탄광촌 전체를 통제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행정부나 광업소는 탄광노동자들을 계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탄광노동자의 사생활에 대한 개입은 광업소가 지닌 무소불위의 권력을 보여주기도 하거니와 의식개혁이라는 국가 정책에 맞닿아 있다. 당시엔 광업소뿐만 아니라 지역 행정부 역시 선도라는 명목으로 가정의 사생활에 깊숙이 개입하고 나섰다. 다음의 글은 태백시가 공개적으로 홍보한 내용이다.
광산인구가 73%를 차지하는 인구구성의 특이성을 지닌 본 시는 광산인구의 의식개혁이 바로 태백시민의 의식개혁과 직결된다는 사실에 입각, ‘가정선도 상담실’을 개설함으로써 탄광촌의 탈선 퇴폐행위 추방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건전한 가정, 명랑한 직장, 밝은 광산촌을 점차적으로 도모하는 한편…(태백시,「태백권의 복지도시건설」,『도시문제』19, 대한지방공제회, 1984)
정선지역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암행독찰대는 탄광막장 뿐만 아니라 불만을 표출하는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해 사택촌의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화투, 폭음, 폭력, 여자관계, 심지어는 부부싸움 등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했다. 광업소 밖의 사생활 역시 탄광노동자의 징계로 이어졌다. 광업소는 사택이라는 집단 거주지를 통해 광부와 그 가족들의 사생활 감시를 쉽게 할 수 있었고, 이는 의식 통제로 이어졌다. 김수환 추기경 역시 사북 고한의 탄광지역을 방문했을 때 광부와 가족들이 통제와 감시를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국이나 업주 측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을 늘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방문도 경계하는 것 같았고요. 제가 광부들의 아내들과 만날 때는, 새마을 지도자가 미리 그 집 뒷방에 와서 오가는 얘기들을 열심히 적었다고 합니다. 그런 풍토를 다들 잘 알고 있는 터라, 뭔가 얘기를 유도해 봐도 업주 측이나 당국에 거슬리는 얘기는 전혀 안 합니다.(김수환,「우리를 위하여 희생당하고 있는 사람들-탄광지대의 인생 막장에서」,『경향잡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5)
우리나라의 탄광촌 성립은 불과 7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세상 밖의 일이거나 옛날의 전설 같은 얘기들이 현대의 한국 탄광촌에서 생겨났다.

또 상식 밖의 놀라운 일들이 광업소 단위별로 생겨났다. 같은 탄광촌에서 살더라도 광업소가 다르면 모를 만큼 정보망이 제한되어 있었다. 이제부터 탄광촌에 관한 한 자신이 몰랐다고 하여 이 세상에 그런 일이 없었다고 얘기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