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공군부대 기체반 8명이 지난 9일 휴일을 활용해 봉사활동에 나선 일이 지역 사회의 훈훈한 미담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강릉 지역의 향토문화재인 주희영정 사당을 정비한 데 이어, 근처에서 홀로 거주하던 할머니의 살림까지 보살펴 드렸다. 마침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사랑과 애국정신이 강조되던 달이었으니 군인의 봉사활동은 무엇보다 더 뜻 깊었다. 군복을 입고 국가의 안보를 지키던 현역군인들이 휴일을 맞아 사복차림으로는 주민을 돕고 지역을 보살피는 모습에서 진정한 나라사랑과 애국정신이 우러났기 때문이다.
강릉 공군부대 기체반의 김영주, 박한필, 이승치, 김민우, 장혁재, 곽재원, 유인경, 송화섭 씨 등 일행 8명은 토요일 아침 9시도 채 되기 전에 강릉시 유천동에 있는 윗느릅내(上楡川) 마을을 찾았다. 윗느릅내는 마을 앞으로 흐르는 위촌천에 느릅나무가 많이 자란다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윗느릅내(상유천길 8번지)에는 주자학의 창시자인 주희(朱熹)의 영정을 모신 조선 말기의 영당이 있다. 송나라 주희의 영정을 모시면서 회암(晦菴)이라는 주희의 호를 따라 회암영당(晦菴影堂, 일명 주부자영당)라고 이름 붙였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7호로 지정된 회암영당은 강릉시의 소중한 문화재이다. 해마다 음력 삼월이면 회암영당에서 유림학자들이 모여 성대하게 다례를 지낸다. 부대원들의 봉사활동에 따라나선 김영주 씨의 아들 투태(태균 태원)는 강릉에 주희의 영정이 있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참에 부모님은 투태에게 주희에 대한 소개도 하여 좋은 공부까지 된 셈이었다.
공군부대 기체반원들은 문화재를 아끼는 마음으로 회암영당의 주변에 우거진 풀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아예 작정하고 나선 이들이라, 손에는 예초기와 전기톱까지 갖추었다. 군인들이라서인지 장비를 활용하여 문화재를 정비하는 솜씨가 연습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했다.
군인 두 명이 제초작업을 계속 진행하는 동안 다른 부대원들은 회암영당 바로 아래에 위치한  할머니(92세)의 집을 찾았다. 할머니는 혼자 살고 계신 터라 땔감 마련이 힘든 처지였다. 작은 전통 한옥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아직도 장작을 활용해 난방을 하고 있었다. 부대원 장정 여섯 명이 각각 전기톱과 망치를 들고 땔감 준비에 나섰다. 이번에 준비한 땔감은 장작이 아니라 지난해 집 근처 송양초등학교 공사 현장에서 거푸집으로 쓰고 남은 목재들이었다. 공사 현장용으로 쓰던 것이다 보니, 제각각 모양이 다른 터에 못까지 박혀 있어서 할머니가 땔감으로 쓸 수 있도록 다듬는 작업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부대원들은 아궁이의 크기를 잰 뒤에 전기톱을 활용해 할머니가 손에 잡기 좋을 만한 크기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자른 땔감들은 할머니가 사용하기 좋은 장소에다 층층이 쌓았다.
힘 좋은 장정들이 즐거운 봉사정신으로 하는 일이어선지, 쉽지 않은 작업들인데도 불구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론 일하는 동안 공군부대 기체반원의 이마에서는 이슬 같은 땀방울이 송이송이 맺혔다. 육체적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때, 힘이 많이 들죠?”하고 곁에서 물으면 “힘들지, 하지만, 일하다 보면 다시 힘이 생겨”하고 웃었다. 그들의 웃음 속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웃음이 만들어내는 묘한 감동의 기운이 흘렀다.
이날 부대원들은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삶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날 봉사활동에 나선 박한필 씨(34세)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할머니 집처럼 낡은 한옥집에서 셋방살이를 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할머니 집의 바닥 낮은 흙바닥 부엌이며 바람 숭숭 통하는 문짝들을 보면서 유년 시절을 회상했던 것이다. 박한필 씨는 할머니 집을 한참 훑어보면서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잠겼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불편함이나 아픔을 알 수 있을까? 박한필 씨의 마음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잘 도우면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