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두 마리의 개와 한 마리의 다람쥐를 키우고 있었다. 할머니의 개는 사람들을 살갑게 맞았다. 아파트에 사는 애완견들은 대개 예민하여 사람을 경계했는데, 할머니네 개는 밝고 허물이 없어 마치 시골 인심을 보는 것 같았다. 할머니네 개는 투태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달려들더니 계속 핥고, 장난치며 대들었다.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 투태가 더 당황했을 뿐이다. 아이들과 개들의 정겨운 장난을 지켜보던 다람쥐마저 신이 한껏 났는지, 구경을 하다말고는 열심히 쳇바퀴를 돌렸다. 나중에 부대원들까지 모여드니까 점프도 하면서 한바탕 쇼를 펼쳤다.

이것을 본 할머니는 “매일 노인네랑 만 있다가 젊은 사람들이랑 애들이 오니까 신이 나서 저런다.”면서 “호호호” 크게 웃었다.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고, 거동은 조금 불편해 보였지만 연세에 비추어볼 때 정정하셨다. 강릉에 살고 있는 아들은 중장비 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좋지 않은데도 막노동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아들의 살림이 바빠서 잘 찾아오지는 못하지만 할머니는 “다, 부모가 부족해서 그렇다”면서 오히려 자신을 탓했다. 부모의 내리사랑의 깊이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혼자 식사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투태 엄마가 궁금해 이것저것 물어보자 할머니는 “몰라서 남들 도움도 못 받는 처지인데, 혹시 부식이 지원되는 곳을 알면 신청 좀 해줘요.”하고 부탁했다. 부대원들도 이런 일을 처리하는 것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할머니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적은 다음 수소문을 시작했다.

여러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던 중에 강릉에 제법 많은 봉사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월정사 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원동부노인보호전문기관’에 연락이 닿은 것도 그래서였다. 14일에는 복지사 선생님들이 할머니를 방문해서 최대한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나섰다. 반찬 지원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에서 지원 받을 수 있는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신청할 수 있는 내용과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부대원들이 땔감 준비와 집주변을 정비하면서 할머니의 식생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뜻밖의 지원까지 이끌어낸 것이다. 역시 돕는다는 것은 애정이 담긴 대화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강원동부노인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까지 듣고 보니 부대원 8명과 투태네 엄마는 감동으로 목이 메여왔다.

김영주, 박한필, 이승치, 김민우, 장혁재, 곽재원, 유인경, 송화섭 씨 등 부대원이 작업하는 내내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 너무 고마워요. 이걸 어쩌나. 내 놓을 것도 없고 줄 것도 없는데”하셨다. 슬금슬금 방으로 들어가시던 할머니는 강정 한 묶음과 개복숭아로 끓인 물을 내놓았다. 집 주변 40~50평 정도의 밭에는 할머니가 손수 심어서 가꾸는 옥수수밭이 있다. 할머니는 그 밭을 가리키면서 “줄 것도 없는데, 옥시끼(옥수수)가 열리면 삶아 줄 테니 그 때 꼭 와”하셨다.

투태는 집 옆의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따 먹으면서 맛있어 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 길에 할머니는 태균과 태원을 자꾸만 부르시더니 아이들 손에 꼬깃꼬깃 접은 오천 원짜리를 한 장을 쥐어 주셨다. 한껏 철이든 태균은 계속 거절을 하는데도, 할머니는 야단까지 치면서 건네주었다. 돈을 받은 태균은 어린 마음에도 고마움보다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 “엄마, 할머니가 돈도 없을 텐데 내게 돈을 주셨다고요.”

투태네 부모는 “할머니 수입이라고는 기초노령연금 9만 원이 전부라고 하셨는데 그 마음을 어쩌나.”하면서 집에 돌아온 저녁 내내 할머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