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에도 키가 있다. 고기압이란 마치 산처럼 공기가 키가 크다는 뜻이고, 저기압이란 계곡처럼 공기가 키가 작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산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지듯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공기가 움직인다. 산이 높을수록 골이 깊을수록 바람은 세게 분다. 태풍이 오면 강풍이 부는 것도 태풍이 매우 기압이 낮은 저기압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기압 차이를 만드는가. 시지프스의 바위가 늘 산꼭대기에 있도록 만든 것이 저승의 신 하데스라면, 대기 중에 기압 차이를 만드는 것은 지구 상 운동에너지의 원천인 태양이다. 태양열로 인해 지구 표면이 가열되는 정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기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바다는 태양열로 인해 물이 증발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수증기가 다시 응결하면서 잠열을 방출한다. 방출된 잠열은 공기를 더욱 급속도로 이동시킨다. 태풍의 가공할 만한 위력도 해수면 온도 27℃ 이상인 바다에서 증발된 많은 수증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태풍은 강력한 파괴력으로 인해 전쟁사에도 종종 등장한다.

정동행성을 설치하여 여몽연합군이 3,500척의 대규모 원정군을 보냈음에도 일본을 정벌하기는커녕 겨우 3천여 명만 살아서 돌아온 것도 공격일인 1281년 8월 15일의 태풍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神風[가미카제]를 일본의 수호신으로 삼았고, 태평양 전쟁에서는 자살 특공대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제국주의 시대에 남태평양의 사모아를 차지하기 위해 독일, 미국, 영국의 군함 7척이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을 이루고 있을 때 전쟁을 멈춘 것도 태풍이었다. 태풍을 피해 외해로 대피해야 했음에도 다른 나라보다 늦게까지 버티는 치킨 게임(Chicken Game)을 하다가 결국 태풍을 맞아서 4척의 군함과 146명의 인명을 손실시켰다.

강풍을 동반한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지나갔다. 강원지방기상청(청장 조주영)의 잠정집계에 의하면 강원지방기상청 관내에서는 다행히 이재민은 없었다. 그런데 볼라벤이 지나간 자리에 곧이어 제14호 태풍 덴빈이 들어와서 많은 비를 뿌렸다. 덕분에 기상청 직원들은 마치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비상근무의 연속이었다. 하물며 농어민을 비롯해 태풍으로 인해 생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들은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풍성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앓는 홍역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큰 피해는 없이 달디단 결실만을 많이 얻으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