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는 1980년 4월1일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의 통합으로 탄생된 도시이다. 북평지역은 삼척의 북쪽에 위치한 넓은 들판이란 의미로 뒷들(後坪) 또는 북평(北坪)이라 불린 지명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 삼척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통합 당시 삼척군은 1개 군에서 삼척시·삼척군·동해시·태백시 등 4개 시·군의 행정직제로 분리 개편될 만큼 지역발전이 가속화되었다. 한편 묵호는 1942년부터 강릉군 망상면에서 묵호읍으로 승격된 지역으로, 1955년부터 명주군으로 불리다가 동해시로 탈바꿈한다.(강릉군에서 강릉시로 승격되던 1955년 강릉시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강릉군 지역이 명주군으로 개칭된다. 명주군은 1995년 5월 행정 구역개편 때 강릉시로 통합되면서 폐지되었다.)묵호가 속한 행정직제는 최근 60여 년 사이에 강릉군, 명주군, 동해시 등으로 도시명의 변경이 잦았다.

동해시 탄생의 개요에서도 알 수 있듯 장소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다. 지명을 얻기까지 지역사회의 삶과 문화가 부대끼며 그에 걸맞는 이름을 얻게되는 것이다.

지명은 지명유래만이 아니라 문학작품 속에서도 지역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확보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지역의 장소가 지닌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돌아보고 재평가하는 것은 지역문학의 몫이다.

장소와 공간에 주목하는 문학지리학적 관점에서 동해지역시인들의 문학작품에 반영된 장소를 살펴보고, 동해지역의 정체성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동해지역의 지명을 드러낸 시 편수를 보면 동해문인협회가 발행한 『동해문학』 창간호부터 19집(1988~2007)까지 수록된 총 624편 중 62편, 동해삼척작가동인의 『동안』창간호에 수록된 회원 시작품 38편 중 3편, 동해여성문학회 동인지 창간호부터 9집까지(2000~2008년) 수록된 총 395편 중 24편이 있다. 이는 지역문인들이 만든 지역문학동인지가 지역성을 드러낸 작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실정을 드러낸다.

저놈의 미친 파도산의 높이 해가며

몹쓸 동해바닥 발목을 붙들고 놔주질 않아

온 들판에 해화 지천으로 피면 뭘해

꽃들에겐 도통 눈길 없으니 이를 어쩌나

풍성한 젖무덤 보일 듯 말 듯 해가면서

까막바위까지 날아가면 갈수록 감질난 갈증만 더해

박제된 수음이라도 해야될까봐

푸른 바다의 빳빳한 성질머리 하고는

그새를 못참고 추암촛대바위 모양새로 덤빈다니

백합조개처럼 탱글탱글한 엉덩이 까고 소피보는 저 여인네

아무일 없다는 듯 갈매기들이 포구를 날아오르고

다문다문 적은 항해일지엔 꽃나비 춤이 표표한데

한창일 때 묵호항등대 옆구리에 끼고 살아온 세월만큼

암고운부전나비는 동해바다로 밀항한다

이애리

「암고운부전나비 밀항하다」 전문

� 이 시에서 바다는 동해지역만의 바다로 형상화되고 있다. ‘저놈의 미친 파도산의 높이 해가며…발목을 붙들고 놔주질 않’는 ‘몹쓸 동해바다’이거나, ‘푸른 바다의 빳빳한 성질머리 하고는/그새를 못참고 추암촛대바위 모양새로’(이애리,「암고운부전나비 밀항하다」) 덤벼드는 구체적인 동해지역의 바다로 재탄생한다.

장소지명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동해지역시인으로는 이애리를 꼽을 수 있다. 구체적인 지명을 담아내려는 의식적인 작업이 엿보일 만큼 많은 작품에서 지역성을 반영하고 있다. 위의 작품만 하더라도 ‘동해바다’를 비롯해서, ‘까막바위’, ‘추암촛대바위’, ‘묵호항 등대’등 동해지역의 구체적 장소가 시 전편에 장치되어 있다.

또 다른 작품「장수야 몰아라-벌통」 역시 벌을 쳐서 생계를 꾸려가는 아버지의 삶을 ‘북평장’, ‘명주막골’, ‘우둥박골’등의 장소를 따라 전개하고 있다. 이애리의 시어가 비교적 풍부한 것은 구체적 장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