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에서 성장한 정영주의 시에서는 묵호와 어달리가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그려지고 있다. 묵호의 지명과 지역생활 환경은 고래와 검은 이미지의 결합 속에 구체성을 띠고 있다.

정영주는 묵호에 대한 정체성을 가장 잘 담아낸 시인이다. 위의 시 ‘묵호는 검은 고래다’를 비롯해 ‘묵호에 사는 아이들은/늘 새벽잠을 빼앗긴다, 해초 이파리 같은’(「어달리 아이들」), ‘아랫도리를 잃은 도시/그곳은 아버지의 도시였다’(「아버지의 도시 1」), ‘품앗이 도시//묵호에서는 밤도 내다팔아야 했다//떠돌이 사내들 몽땅 걷어다/바다에 내주고 탄광에 버려도/검은 입 다물고 침묵하는 도시’(「아버지의 도시 2」), ‘묵호는 바다까지도 닫혀 있었다/스스로 블랙홀이 된 도시’(「아버지의 도시 4」), ‘묵호는 대책 없이 덤벼드는 모든 사내들에게/천국이고 지옥이었다’(「아버지의 도시 5」), ‘검은 복면의 사내인 묵호’(「오월의 신부」) 등에서 나타나듯 묵호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해 작심이라도 듯 시편들 곳곳에서 선언적 진술을 하고 있다.

정영주는 시집 제목으로 삼은 「아버지의 도시」연작을 통해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묵호주민들의 삶을 체험 속에 우려내고 있다. ‘넘쳐나는 바람과 햇빛과 도망 나온 가난이어도/묵호의 거리는 금방 건져올린 생선만큼이나/때로는 팔팔하고 젊을’(「아버지의 도시 1」) 것이라는 시구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역동성을 잃지 않는 묵호의 세계로 안내한다.

지역문학작품은 ‘북평장날표 발자국들’(이애리,「코고무신」)을 찍듯, 지역의 역사와 지역민의 삶의 궤적을 요구한다. 동해지역문학을 살피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장소나 지명을 강조하는 것은 시에서는 지역민의 삶이 묻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동해지역의 대표적 소설가인 심상대를 세상에 알린 작품은 지명을 제목으로 내세운 『묵호를 아는가』였다.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둘러 독한 술로 몸을 적시고, 방파제 끝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토악질을 하고,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부두의 적탄장에서 날아오르는 탄분처럼 휘날려, 어떤 이는 바다로,어떤 이는 멀고 낯선 고장으로, 그리고 어떤 이는 울렁울렁하고 니글니글한 지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멀리 무덤 속으로 떠나갔다.(심상대,『묵호를 아는가』, 민음사, 1990, p.97.)

지명에 대한 문인의 호명은 장소, 즉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애정의 표출이다. 지역을 드러내는데 있어 장소는 지역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렐프는 장소란 추상의 개념이 아니라 생활세계가 직접 경험되는 현상이며, 공동체 정체성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역주민의 삶을 작품 속에 투영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구체적인 장소지명에 접근하려는 시의식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동해지역시인들의 많은 작품에서 보여지듯 피상적 기행, 축시형태의 관념적 요소 등은 지양해야 한다. 장소의 의미와 구체적 형상화가 부족한 채 단순 소재로 접근하는 등 지역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창작의식의 결여라 할 수 있다.

지역문학에서는 무엇보다 지역적 삶의 정체성을 꿰뚫고, 지역의 일상적 현장을 내밀하게 보는 관찰력이 요구된다. 창작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라도 지역의 내부, 삶의 내부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지역문학작품 속의 장소지명은 지역성, 정체성, 향토성을 구체적으로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묵호는 검은 고래다

새벽마다 허옇게

바다를 벗겨내는 어부들이

선창가에 비릿한 욕지거리를 잔뜩 풀어놓으면

고래입 같은 아가리배에서는

온통 욕지기질로 헐떡이는 생선들……

경매가 시작되면

선창가는 거대한 고래 뱃속이다

부스스 무너지는 어둠 속에서

퍼덕거리다 뒤로 나자빠지는 그네들의 흥정

독한 비린내까지 경매로 팔려나가면

묵호는 체증에 걸린 고래 뱃속을 빠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