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여론이 찬성과 반대, 어느 한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지기보다 국민들을 이념화 분쟁의 씨앗으로 몰고 가는 정치권, 더 이상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상생의 정치권. 일하는 정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에 한 표 던진다.

이 뿐인가 저 출산, 내수 감수, 일자리의 질이 추락하고 고용이 불안해서 오는 현상들... 노인층 비율이 증가하고 젊은 층 비율이 감소하는 등 사회적 문제가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다.

저 출산 고령화 문제를 방치했을 때, 인구 감소와 생산성 감소는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각종 사회 기간산업에 일할 사람이 없어지고 현역 노동자층의 과도한 세금 납부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는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를 직시하고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정치권의 현실에 국민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상지(上智)의 사람은 미연에 환히 알고 있으므로 난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스리고 나라가 위태롭기 전에 미리 보전하며, 중지(中智)의 사람은 이미 일어난 뒤에 깨닫게 되므로 난인 줄 알고 다스릴 것을 도모하고 위태로움을 알고 안정시킬 것을 도모하고, 난이 닥쳤는데도 다스릴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태로움을 보고도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지(下智)의 사람이 될 것이다.

율곡 이이가 선조(宣祖)에게 올린 상소의 내용이다.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람은 위기를 미리 예방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위기가 발생한 뒤에도 수습하지 못하고 안정시킬 방도를 찾지 않는다는 뜻이다.

율곡은 이 상소에서 당시 조선의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고 경장(更張:다시 고쳐 확장함)을 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가 뒤이어 한 말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된다.

대관(大官)들은 녹봉만을 유지하면서 실지로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지닌 사람이 적고, 소관(小官)들도 녹 받아먹기만을 탐내면서 전혀 직책을 수행하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여 서로 옳지 못한 행위만을 본받으므로 관직의 기강이 해이해졌다.

필자는 공직자는 아니지만 사회의 한 일원으로 역시 사회적, 정치적으로 묵은 제도 따위를 고쳐 새롭게 하지 않으면 나라는 필시 힘들어 질 터인데 라는 생각에 그냥 앉아서 그 날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조바심에 앞서 이 글을 쓴다.

지난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에서 구제 금융을 받을 때 나라가 망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후 온 국민이 힘을 합해서 나라를 다시 세운 덕분으로 이제 국민소득 3만 불에 가까운 선진국에서 산다고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여겼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 해가 지나는 동안 이런 자부심은 다 사라지고 나라가 빈껍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위험이란 것이 예외적인 상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전하다 여기는 일상이 위험한 기초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것, 우리가 믿고 있었던 시스템이 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험이 너무 일상적이고 거대한 것으로 느껴지기에 오히려 이제는 그냥 위기와 불안에 대해 체념하려는 마음까지 생기려 한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 일상의 위기를 알았다면 그것을 안정시킬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간혹 돈에 쪼들릴 때 갑자기 억만금이 떡 하니 생기는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기도 하고, 자신의 힘만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뭐든지 다 해결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바라거나 그게 아니라면 나 자신에게 갑자기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면 하고 바라곤 한다. 그런데 이런 행운이 있을 수도 없지만 우연찮게 얻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행이다. 행운이라 여김은 코앞만을 보기 때문이며 불행이라 여김은 먼 앞날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전체 국력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커져 있는 상태이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왜 그럴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갖가지 불합리한 제도가 얽히고설켜 민생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는 잘못된 제도를 개혁하여, 사회의 모순점을 해결하고 민생을 안정시켜 주어야 한다.

제도를 개혁하고 정비하는 과정 중에는 반드시 기득권층의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것이다. 과연 반대를 무릅쓰고 제도를 제대로 개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득권층의 반대에 굴하지 않고, 온 국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서민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싶다.

오늘의 이 위기는 이 사회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위험부담을 균등하게 분배해 그 위험으로 특별히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입는 사람이 없도록 하여 위험을 근원적으로 줄이려 할 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지혜로운 상지(上智)의 사람이길 바라기는 힘들더라도 가장 어리석은 하우(下愚)는 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박혁종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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