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봄볕이 화창하다. 긴 겨울 생명의 불씨를 안고 혹한을 건너온 풀과 나무들이 파릇파릇 새싹과 새순을 밀어내더니 어느 새 온갖 꽃들을 산과 들 그리고 마음 온 통 한가득 아름답고 향기롭게 피워 찬란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벌과 나비들이 날아와 꽃의 빛깔과 향기를 만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과 나누어 가고, 여기에는 또 다른 지킴이 있었다. 서로에게 다치지 않고 꿀을 가져가는 대신 꽃가루받이를 해주어 열매를 맺게 도와주는,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 해치지지 않는 이 평화로운 대자연의 모습에서 경외로움을 지금 여기서 본다.

반면에 생명을 가볍게 여겨 부모가 어린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늙은 부모를 살해하며, 아내가 남편을 청부살인하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애인이 변심했다고 죽이고. 심지어 농촌의 늙은이가 사소한 다툼으로 이웃사람들을 농약으로 살해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인간사회의 모습은 무간지옥 중의 무간지옥이 아닐 수 없다.

2600여 년 전 어느 한 성인의 이야기는 태어나자마자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 獨尊 천상천하유아독존)”고 외쳤다.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는 뜻은 성인의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우주에 있는 모든 개개의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전해 들었다.

즉 생명체 개개의 존엄성과 인간의 존귀함을 엄중히 가려 말 한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 한다. 부연하면 이 말은 비록 하찮게 여겨지는 한 마리 개미일지라도 그 개미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영원히 있을 수 없다. 오직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존귀하고도 존귀한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개미의 생명을 빼앗거나 해쳐서는 안 된다는 생명존중 선언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되기 전인 농경사회에서는 사람들 마음속에 생명존중 사상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가 바탕이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해 본다.

한 가지는 논밭에 나가 자식을 키우는 정성으로 곡식을 가꾸고, 또한 가족을 돌보는 심정으로 가축을 기르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생명의 존귀함을 터득하게 되었을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5천년을 이어온 조상의 영향이 아닐까? 즉, 우리 겨레의 생명존중 사상이 자연히 자손들의 몸과 마음속에 DNA처럼 박혀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살생과 구명(救命)을 실천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뜨거운 물을 식혀서 버림으로써 하수구의 생명체가 죽지 않도록 하고, 대체로 육식을 금하고, 잡힌 동물을 방생하고, 밥알 한 톨도 버리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생명유지를 위한 살생을 최소화 한 것으로 보여 진다.

농경 사회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들은 지팡이 손잡이 위에 방울을 매달아 지팡이를 짚을 때마다 방울소리를 내어 길바닥의 벌레가 달아나게 함으로써 벌레를 밟아 죽이지 않게 배려했다. 이렇게 짐승과 미물인 벌레의 생명까지 소중하게 여기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라면 어찌 감히 사람을 해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산업화로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고 개인화 되어버린 생존경쟁이 치열해지자 사람들은 물질에 매혹되어 착한 심성을 버리고 사악해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사람의 생명을 물질보다 하찮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을 것이다.

생명경시풍조로 병든 우리사회를 구원할 길은 성인들의 가르침 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금 이때야말로 모든 어른들이 적극적인 사회 참여로 우리 겨레의 생명존중 사상을 널리 전파하고 적극 실천할 때가 아닌가 싶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 곁으로 밀려올 사태에 대비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가정은 우리 모두 삶의 원천이요 희망이며, 가족구성원의 성장 동력인데 가정의 붕괴로 나타나는 자녀유기, 노인부양거부, 청소년비행 및 범죄, 학교폭력의 증가로 인한 사회의 안정과 국민적 통합이 심각한 저해요인이 되고 있어 걱정이지만 가정의 올바른 실현이 곧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적 각종 범죄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주변을 돌아보고 가족과 혹여 실수한 점, 소홀한 점은 없었는지 살피며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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