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나라가 무너진 것은 임금부터 공경대부는 물론이고 백성까지 모두 자신의 직분을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이치와 도리를 지켜야 할 임금과 관원들이 먼저 도망가는데 군대와 백성이 그 자리를 지킬 이치와 도리는 없다. 대포가 있고, 산성이 있고, 군대가 있어도 그것을 지킬 책임 있는 사람이 도망치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뿐이다.

사회, 국가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람들의 모임은 눈에 보이는 규칙이나 보이지 않는 규칙에 의해서 유지되며, 그 사회의 규칙은 어떤 궁극적인 가치 기반 위에 있다.

필자가 말하는 이치와 도리라는 것은 그 사회의 규칙과 그 규칙이 의지하는 가치 기반을 말한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키기를 바라고 지키리라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 사이의 상호성이다. 내가 이것을 지키면 저 사람도 이것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인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 믿음을 배신하면 이쪽도 더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인지상정임에 따라 이치라는 것도 그냥 무너지게 될 것이다.

세월호 사고 때, 우리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 먼저 도망가 버린 것을 보았다. 그들을 믿고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뒤로 사고 수습과 진상 조사를 하고 있지만, 당연한 책임자는 없고 당시 선주와 선사 그리고 눈에 뛴 몇몇 공무원들의 과실만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제는 믿음이 위태위태하다.

경제는 어떤가. 청년 실업은 하룻밤을 자고 나면 늘어나는데 해양대국이라고 각색 각본을 만들어낸 정부와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3년 4천 2백여억 원, 2014년에는 4천 5백여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각각 165억 원과 6,392억 원 적자였다.

해양플랜트 사업의 공사진행률을 부풀려 이익이 난 것처럼 꾸민 것이다. 대규모 영업손실을 보고도 직원들은 성과급 877억 원을 챙겼고, 정부의 낙하산으로 내려온 전직 임원 등 15명은 자문위원으로 이름만 올린 채 많게는 매달 2천만 원씩, 22억 원을 가져갔다. 이뿐인가. 부실경영의 대명사가 된 대우조선해양은 회사 직원 관리 또한 제대로 하지 못했다. 8년간 회삿돈 180억 원을 빼돌려 명품 구입과 주식 투자, 고가의 수입차 리스는 기본. 빼돌린 돈으로 내연녀와 함께 부동산투자회사를 차려 부산의 100억 원대 빌딩까지 매입한 직원도 있었는데, 회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사회는 어떤가. 대낮에 등산로에서, 산책하는 여성들을 기존공식을 깨는 성범죄와 묻지마 살인 사건 등 총체적 사회적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치권은 어떠한가. 20대 국회가 시작되자 곧 바로 ‘김수민 리베이트 수수 의혹’ 관련 핵심 인물인 국민의당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이 검찰에 소환된 가운데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이 “당으로 유입된 돈이 없다”고 중간결과를 발표하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여론은 더 악화되는 분위기다.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임진왜란을 앞에 두고 있다.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직분을 다함으로써 이치와 도리를 지켜,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 있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고 있다. 모두가 이 시대의 충무공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구세주를 바라기보다는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망국의 원인을 없애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눈앞의 이익과 편리 때문에 불합리를 묵인하고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끝까지 이치를 따지고 도리를 지켜야 한다. 이치와 도리가 없으면 결국 망할 뿐이다. 그것은 4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인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도도새’의 길을 걷고나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앞선다. 이 새는 먹이가 풍부하고 천적도 없는 환경에서 살았기에 굳이 날아오를 필요가 없어 날개도 퇴화하고, 빨리 뛰어다닐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다리도 짧았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 선원들이 도도새의 서식지인 인도 모리셔스 섬에 상륙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먹을거리를 찾던 선원들은 도도새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도도새는 천적이 없었고 인간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겁을 내지도 않았고 도망가지도 않았다.

자연히 도도새는 좋은 식량이 됐고 선원들이 들여놓은 원숭이, 돼지, 쥐, 개 등이 알과 새끼들을 마구잡이로 먹어치우자 멸종하게 되었다.

도도(Dod~o)는 포르투갈어로 '바보'라는 뜻, 포르투갈 선원들이 도망가지도 않고 날지도 못하는 이 새를 '바보 새'라고 부른 데서 시작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했다. 도도새가 안주했기 때문에 멸종된 것이라고,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묻고 싶다. 인간이 손길을 뻗지 않았다면, 도도새가 멸종까지 됐을까? 도도새를 어리석은 새로 인식하기 전에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먼저 저지른 건 아닐까? 라고 신중하게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