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민들의 대부분 에어컨을 틀면서도 마음 한편은 불안하다. 전기요금 폭탄을 맞지는 않을까 걱정되어서다. 전기 요금이 이렇게 가파르게 상승하는 이유는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 때문이다.

오일쇼크가 일어난 직후인 1974년 처음 도입됐는데, 처음엔 최고 누진율이 1.6배였다가 지금은 11.7배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누진제 도입 초반만 해도 에어컨 보급률이 3%밖에 안됐지만 지금은 전 국민의 78%가 가지고 있는 생활필수품이 됐다는 것이다.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거의 전 국민이 누진제에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낄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올해 폭염은 참 견디기 힘들다. 국민들은 더위에, 전기 요금에 이중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기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한국전력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벌써 6조원을 넘어섰다.

시민들 불만이 커지자 정치권이 누진제를 손보겠다고 나섰지만 국민이 만족할만한 대안은 없을 것 같다.

한편 누진제 완화에 대한 국민 여론이 높아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만난 오찬 자리에서 “올해는 이상고온으로 너무 많은 국민이 힘들어 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어떻게 좋은 방안이 없을까 검토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인데 당과 잘 협의해 조만간 방안을 국민에게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 여론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정부가 뒤늦게 누진제 완화 카드를 꺼낼 참이다.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태도이다. 사회안전망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음에도 솔선수범하여 사전 예방에는 뒷전이다.

정치는 국민의 행복과 안녕이 우선돼야 하는데 ‘민중은 개·돼지’ 막말 파문을 일으킨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의 행태를 다시 경험하는 듯하다.

정치권과 정부는 매번 뒷북이다. 감사원이 2013년에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선하라”고 산업부에 통보했지만 관련부처들은 사실상 묵살했다.

감사원이 2013년 6월 공개한 공기업 재무와 사업구조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결과 보고서에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도 운영 불합리'란 항목을 통해 현행 누진제의 문제점들을 지적됐다.

전력 사용량과 1인 가구 비율 증가 추세를 반영 안 해, 저소득층 보호란 당초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감사원은 가장 낮은 단계인 1단계 누진제 요금을 적용받는 가구 가운데 소외계층은 6%에 불과하다는 2008년 한국전력 조사결과도 첨부하면서 산업부 장관에게 “환경변화에 맞춰 전기요금 누진제를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지만, 사실상 3년 넘게 묵살 당했다.

최근 폭염으로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폭증하자 한전이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이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행 누진제에 대해 “구간 수를 줄이고 요금 차이도 좁히는 등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지만 마음에 와 닿기는커녕 괘씸한 생각이 든다.

지난해 한전 영업이익이 11조 3천억 원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대기업에 대해서, 특히 전력을 많이 쓰는 대기업일수록 할인 혜택을 주면서 국민들의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에서 얻은 소득을 그리로 다 옮겨 줬다. 국민들이 손해보고. 대기업 쪽에서 1~2조 이익을 보는 그런 구조 아닌가? 전기요금을 적정화해서 오히려 절전투자와 수요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진제 폭탄 이야기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는 개선 대상이다.

가정의 에어컨 보유율이 80%인 시대, 어지간한 집에 김치냉장고 한 대 쯤은 다 있는 시대가 아닌가? 40년 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자꾸 국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정치를 올바르게 펴지 못하고 그것을 왜곡해 가며 국민을 기망하는 정치인들은 이 나라 안에서는 필요 없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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