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서리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국화의 계절이다. 연꽃은 지고 나면 빗살 받칠 덮개가 없지만, 국화는 시들어도 서리를 이겨내는 가지가 있다.

필자는 국화를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할 말을 다 하지 않고 참고 있는 듯하며, 여러 역경을 견디어 낸 후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은은한 미소와 기품 같은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향기마저도 그윽한 데가 있어서 경박하거나 속되지 않고 진중하며 전아한 풍도가 있어 보인다.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도연명은 ‘세 오솔길은 황폐해졌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네’라는 대목이 있고 ‘가을 국화 자태도 아름다운데, 이슬 젖은 꽃을 따네’ 라는 등의 시 구절이 절개와 지조 그리고 아름다운 향을 겸비하고 있다.

그렇다. 국화를 좋아하는 마음에 평소 술을 들지 않고 웃지 않는 사람도 술을 한 잔 하고 싶고 절로 마음이 밝아진다.

봄이 사람 마음을 가볍게 뜨게 하고 희망에 부풀게 한다면 가을은 아무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하다못해 들판 한 귀퉁이에 긴 목을 빼서 푹 숙이고 있는 수숫대는 깊은 명상이라도 하는 듯하며, 개울가의 갈대나 밭둑의 억새는 바람에 서걱거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철리라도 설법하려는 양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또 담담하고 은은한 자태로 옛 문인들의 사랑을 받은 국화가 서리를 오만스럽게 대하며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10월의 마지막 날, 노란 은행잎 수북이 쌓인 거리 의자에 앉아 있자면, 바람이 휘이~ 하고 지나간다. 특히 갈대 사이로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듣기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갈대가 움직일 때마다 거리에 이곳저곳 수복하게 핀 국화도 함께 움직인다. 계절 타기에 딱 좋은 경이로운 날이지만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삶의 고통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사회적 해법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득권 집단의 체제가 변화하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된 현실이다.

사회도 정치도 다른 어떤 형태의 집단들도 낡은 모습에서 벗어나서 개혁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력, 명예, 부 등을 잃지 않으려는데 있다. KBS 특집방송 ‘다르마’에서 세계적인 불교학자에게 불교의 핵심을 한 마디로 요약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모든 것은 변한다’라고 답했다.

오늘날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 변화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잘못된 것이 없는데 왜 변화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정말 혁명적이라고 느낄 만큼의 변화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야 한다. 변화해야 하는 필요성을 외면하고 버티다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되면 최악이다. 국민의 대표 격인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재벌과 자본가들은 스스로 자신들에 대해 반성하고 미래를 위한 개혁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10월은 모든 것이 멈춰진 고요한 안정 상태에 이르러 번뇌가 사라져 지혜의 향기가 드러나는 힐링의 계절이다. 가을 풍경을 체감 하면서 모든 번뇌, 고통, 어려움 등의 문제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을 긍정적이고, 새롭고, 밝고, 맑은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사회의 향기이다. 다시 말해 나와 더불어 모든 사람들의 해탈을 함께 성취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10월은 나로부터 나온다. 특히나 나를 변화하는 것이 그 모든 것의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그 아름답고 향기로운 법향이 온 누리에 퍼져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금의 10월을 보낼 것이 아닌가 싶다.

국화를 바라보며 깨달아야 할 것은 무슨 대단한 진리가 아니라 ‘삶의 무상성’이다. 이를 알고 나면 용서 못할 일이 없고, 싸움으로 밤을 지새울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이 바뀌고 변하지 않을 수 없으니 부귀나 권세가 영원할 수 없으며, 가난하고 괴롭더라도 그 가난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가난이나 괴로움도 또한 바뀌고 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문득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의 10월을 위해 우리 모두 국화와 억새 그리고 가을 날 만상들과 밤새며 놀아도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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